좋은 시
풀꽃/나태주
서해기린
2011. 8. 6. 21:37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나태주 -
큰 비, 센 바람에 스러질까, 가녀린 풀은 납작 엎드려 꽃을 피운다.
작은 풀꽃을 제대로 보려면 무릎을 꿇어야 한다.
허리도 굽히고 고개도 숙여야 한다.
바라보는 사람 앞에 고개를 살랑이며 금방이라도 말문을 터뜨릴 듯한
하얀 풀꽃을 온전히 눈에 담으려면 그러고도 한참 더 지나야 한다.
자디잔 바위취 꽃의 하얀 꽃잎 위 점점이 박힌 붉은 반점은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잰 체하며 길쭉하게 내민 두 장의 꽃잎은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알베르 카뮈가 '작가수첩'에 한 줄 메모로 남긴 '용감한 넥타이'는 꼭 이 꽃을 보고 쓴 듯한 착각이다.
자세히 오래 보아야 할 게 어디 풀꽃뿐이랴.
카뮈의 메모처럼 용감한 넥타이를 맨 그대의 눈동자도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고규홍-나무 칼럼니스트>
작고 잘 보이지 않는 것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오래 보면,
예쁜 것이 많다.
풀꽃이 그렇고 들꽃이 그렇다.
작은 것은 자세히 보아야 하고
한참을 보아야 하기 때문에
그새 정이 드는 모양이다.
오래 이십년을 같이 한 그를,
자세히 본다.
묵혀온 정을 달고 있어서인가
억새꽃 늘어가는 머리도
탄력을 잃어가는 팔과 다리도
사랑스럽다.
그의 작은 눈동자 마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