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 무지개아저씨 블로그
비 오는 날이 좋다. 우산으로 토도독 떨어지는 빗소리가 좋고 물을 머금은 풀과 나뭇잎이 선명한 초록이어서 좋다. 처음 땅이 젖을 때 나는 흙냄새는 고향의 향기를 머금고 온다. 아늑한 내 어릴 적 마을로 들어가 우리집 평상에 누우면 앞개울 물소리가 들린다. 돌담과 나란한 가죽나무 사이로 지나는 바람소리도 들린다.
비가 오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이슬비라도 내리면 '고운 님 오시는구나' 행복해진다. 이렇게 비를 좋아하는 내가 더러는 '이 비는 언제 그칠까', '내게는 언제 볕이 들까' 생각하기도 한다. 한 시절, '어제는 비가 내렸고 오늘은 개기 시작한다'는 이 구절을 얼마나 좋아했던가.
비에 젖어 슬퍼지기도 하는데 비가 적셔 희망의 싹을 자라게도 한다. 궂은 비 내리는 쓸쓸한 밤이다가 가뭄 속 단비가 되기도 한다. 똑같은 하나이면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되는 비는 꼭 내 마음 같다. 내가 어느 날은 찬비 되어 스스로 우울해 하고 슬퍼지다가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전염시키며 또 어느 날은 단비가 되어 내 안의 대지를 적시고 파릇한 꿈 싹을 키운다. 이런 날은 역시 다른 사람에게 연두나 초록빛 기운을 쏘아 그도 유쾌하게 만드는 것이다.
알고 보면 비도 나도 한 경계선에서 양자를 다 점하고 있다. 이것이기도 하고 저것이기도 하다. 어제는 맑다가 내일은 천둥이 칠 수도 있다. 오늘은 행복하다가 내일은 불행할 수 있다. 한 발짝만 더 나가면 다른 기분, 다른 세상이다.
나는 오늘을 살고 있다. 산다는 것은 나이를 먹는 것이고 나이를 먹으면 늙고 죽게 된다. 그러면 내가 사는 것은 결국 죽는 지점으로 가까이 가는 것이 된다. 나는 길을 가고 있고 그 길은 끝내 죽음과 이어진다. 삶과 죽음이 한 선상에 있어 연결되고 통하는 것이다. 그러니 마음을 비우고 욕심도 버리고 많이 사랑할 일만 남았다.
사진출처 : 무지개아저씨 블로그
올여름엔 비가 많이도 내린다. 너무 많이 내려 산사태나 홍수가 나서 아까운 인명과 재산피해도 많았다.
적당히만 내리면 좋으련만. 비가 더러 심술궂어 큰 재앙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나는 가뭄속 단비와 무더위
를 식히는 시원한 소나기로의 역할을 더 인정한다.
외로운 이에게 친구가 되어 주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낭만을 선사하는 비, 답답한 가슴을 씻어 내리고
슬픈 사람과 동무해 같이 울어주는 비, 그래서 나는 비가 좋다.
문경 대미산 자락에 있는 친구의 농장에 들렀다가 반가워서 찍은 사진,
어린시절 도랑에 많이 있었고 돼지가 잘 먹어서 우리집에선 돼지풀이라 불렀다.
이날도 비가 내려 풀빛이 선명하니 곱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