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발톱깎는 사람의 자세/유홍준
서해기린
2011. 8. 28. 19:21
발톱 깎는 사람의 자세는
둥글다네
나는 그 발톱 깎는 사람의 자세를 좋아한다네
사람이 사람을 앉히고 발톱을 깎아준다면
정이 안 들 수가 없지
옳지 옳아 어느 나라에선
발톱을 내밀면 결혼을 허락하는 거라더군
그 사람이 죽으면 주머니 속에 발톱을 넣어 간직한다더군
평생 누구에게 발톱을 내밀어 보지 못한 사람은 불행한 사람
단 한 번도 발톱을 깎아주지 못한 사람은 불행한 사람
발톱을 예쁘게 깎아주는 사람은
목덜미가 가늘고
이마가 예쁘고 속눈썹이 길다더군 비가 오는 날이면
팔베개도 해주고 지짐도 부쳐주고 칼국수도 밀어준다더군
그러니 결혼을 안 할 수가 있겠어
그러니 싸움을 할 수가 있겠어
발톱을 깎는 사람의 자세는
고양이에 가깝고
공에 가깝고
뭉쳐놓은 것에 가깝다네 그는 가장 작고 온순하다네
나는 그 발톱 깎는 사람의 자세를 좋아한다네
- 유홍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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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발톱깎는 자세는
고개를 숙이고 자기를 낮추고
둥글어야 하는 겸손한 자세다.
아이들과 어머니, 그리고 그의 발톱을 깎아 봤다.
다치지 않게 아주 조심스레 깎아야 한다.
내 발톱을 깎을 때도 마찬가지다.
가장 온순한 자세로 공처럼 둥글게 있으니
정이 들 수밖에 없겠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발톱을 깎아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