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기린 2011. 9. 17. 13:03

 

 

 

 

전기가 없으면 우리 생활은 어떠할까? 그저께 전국적으로 갑자기 순환정전이 되었을 때 우리집도 예외가 아니었다.

1차 정전은 오후 4시 무렵에 일어났다.  방과후학교 강사인 나는 그때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에게 한자를 가르치고 있었다. 마침 학교에서 집에 돌아온 딸이 핸드폰으로 정전사실을 알려왔다. 눈만 뜨면 보는 TV를 보지 못하고 컴퓨터를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일 게다. 스마트폰도 와이파이가 켜져야 무료로 인터넷접속이 가능한데 정전이 됐으니 답답했을 것이다. 냉장고는 어떤가. 냉온정수기와 비데는? 낮이니 어둡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을 게다.

 

내가 집에 왔을 때는 전기가 들어와 정상상태였는데 저녁에 컴퓨터를 하던 중 또 전기가 나갔다. 밖을 보니 아파트 전체가 비상발전기로 돌리는 엘리베이터와 비상등을 제외하고는 모두 컴컴했다. 우리 집 거실엔 남들 다 있는 비상등도 작동되지 않아 완전 암흑이었다. 비상등이 있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도대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옆동 아짐에게 전화해서 밖에 나와 수다나 떨자고 했더니 금세 나왔다. 아는 얼굴 둘이 더 합쳐져 아줌마 넷이서 왜 정전됐을까를 두고 말이 오갔다.  그때만 해도 늦더위 전력수요를 예측못했다는 말은 거짓일거라고 한여름에도 괜찮았는데 이 정도에 정전이냐 아무래도 북한놈들 소행같다는 의견이 우세했었다. 신호등이 정지되고 항공기가 이착륙을 못한다니 한전 컴퓨터실을 고도의 기술로 망가뜨렸나 보다며 아줌씨들의 상상력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경비실엔 문의전화가 속출해 신호중음만 들렸고 기사들은 이리저리 뛰어 다녔다. 사람들이 웅성거릴 때 방송이 흘러나왔다. 이 정전은 아파트와는 무관한 한전의 문제니 참고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우리 아파트에 비상발전기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엘리베이터 작동이 가능하고 계단의 센서등이 켜지고 각 호의 거실에 하나씩 비상전구가 켜진다는 것은 주민의 편의를 위한 최선책이다. 새삼 관리소에 믿음이 가는 순간이었으며 관리비가 아깝지 않았다.

 

어제 퇴근길에 라디오에서 들은 얘기다. 모프로에서 '갑작스런 정전으로 어떤 일이 있었나' 를 주제로 청취자들의 사연을 받아 전하고 있었는데 우습기도 하고 기가 막히기도 하는 사연들이 봇물을 이뤘다. 우선 몇가지를 들어보면

 

1. 엘리베이터에서 모르는 남자와 아가씨가 갇혔는데 아가씨가 너무 무서워 하더란다. 남자는 보다못해 이윽고  한마디

   "아가씨, 걱정말아요. 나도 아내가 있고 아이가 있는데 허튼 짓은 안해요."

 

2. 주요소에서 주유중에 갑자기 스톱되니 주유기록이 없어졌단다. 얼마가 들어갔는지 알 수가 없어 짐작으로 받을 수도 없고 운전자는 급해서 빨리 가야된다 성화고 해서 하는 수 없이 돈도 안받고 그냥 보냈단다. 주유소 컴퓨터 시스템이 다시 켜지기까지 1시간 30분정도 영업을 못했단다.

 

3. 주 2회 정도 음식물 쓰레기를 모았다 정해진 날에 버려야 하는 한 아파트 부부가 음식물찌꺼기가 잔뜩 든 통을 하나씩 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가 갇혔다. 악취로 인해 질식할 것 같은 순간을 정신력으로 견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졸도했다. 쓰레기는 다른 사람이 대신 버려주고 한참 동안 안정을 취해야 했으며 더 오래 있었다면 죽을 수도 있었단다.

 

4. 다리에 깁스한 중3 아들을 데리고 물리치료하러 갔다 오다가 엘리베이터가 안돼서  20층 정도의 계단을  아빠가 직접 업고 올라갔단다. 아들이 화장실에 가야할 상황이라 마냥 기다릴 수가 없었다고 한다.

 

어디 이뿐이겠나. 손해를 보거나 곤란을 당한, 얼마든지 더한 상황이 있었을 것이다. 신호등이 멈춰 사고가 속출하고 교통대란이 났다고 한다, 횟집 수족관의 물고기들이 산소가 모자라 꼴깍대며 밖으로 나오려고 해 얼음을 가져다 부었더니 덜하더라는 어느 횟집 주인도 있었다. 나중에 늦더위 수요를 잘못 예측하고 23개소의 발전소를 한꺼번에 정지시켜 수리에 들어간 한전과 정부의 잘못이 원인이라고 밝혀졌다.

 

그들은 지금 집중포화를 받고 있다. 어떤 이들은 손해배상을 위한 소송도 벼르고 있다고 한다.  전기료가 너무 싸서 펑펑 써댄다는 비난도 있다. 어찌되었건 모든 사람들은 이참에 전기의 소중함을 더 절실히 깨달았을 것이다. 전문가가 말하는 비상시를 위한 예비전력량은 15~18%가 적정량이라는데 당분간 현재의 7~8%가 더 지속될 전망이라고 하니 문제다.

 

전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전기가 없으면 하루도 제대로 살기 어려울 것 같다. 이번 소동을 계기로 정부와 한전은 전기설비의 후진성을 개선하고 상시 예비전력량을 안전기준까지 올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 우리도 되도록이면 쓸 데없는 플러그는 뽑고 꼭 필요한 전등만 켜두며 냉방 온도를 너무 낮추지 않는 등의 노력을 함께 기울여 절전의 대열에 동참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