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멀리 가는 물/도종환

서해기린 2011. 11. 8. 10:51

 

 

 

 

 

어떤 강물이든 처음엔 맑은 마음

가벼운 걸음으로 산골짝을 나선다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해 가는 물줄기는

그러나 세상 속을 지나면서

흐린 손으로 옆에 서는 물과도 만나야 한다

이미 더럽혀진 물이나

썩을대로 썩은 물과도 만나야 한다

이 세상 그런 물과 만나며

그만 거기 멈추어 버리는 물은 얼마나 많은가

제 몸도 버리고 마음도 삭은 채

길을 잃은 물들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다시 제 모습으로 돌아오는 물을 보라

흐린 것들까지 흐리지 않게 만들어 데리고 가는

물을 보라 결국 다시 맑아지며

먼 길을 가지 않는가

때 묻은 많은 것들과 함께 섞여 흐르지만

본래의 제 심성을 다 이지러뜨리지 않으며

제 얼굴 제 마음을 잃지 않으며

멀리 가는 물이 있지 않는가 

 

 

-도종환-

 

 

 

 

 

도종환 시인이 지난 달 내가 사는 도시에 와서 특강을 했다.

그의 최근 시집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를 사 들고 가서 싸인도 받았다.

그의 시는 흔들리는, 소외되고 힘든, 아픈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에 좋다.

 

            우리나라 국민 애송시 1위가 IMF 이전에는 늘 윤동주의 <서시>였다고 한다.

그러나 힘든 IMF를 지나 오면서 여기서 소개한 적 있는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으로 바뀌었단다.

현재까지 굳건히 1위 자리를 지키며 백화점 입구, 공사장 현장에까지 걸려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다고 시인은 말한다.

이 희망의 시는 소년원의 아이들을 계도시키고 날품팔이 민초들을 일으켜 세우며 힘을 불어 넣는다고 한다.

그러한 희망의 시는 또 있다. 바로 <담쟁이>다. 이 역시 여기에서 소개했었다.

나 또한 '담쟁이'나 '흔들리며 피는 꽃'을 무척 좋아한다.

힘이 들 때마다 한번씩 읽으며 위안을 받는다.

 

위의 <멀리 가는 물>은 물의 본성에 맞춰져 있다.

사람 사는 세상, 혼탁하고 흐린 곳을 지날지라도 같이 물들지 않고

끝내 그 더럽고 흐린 세상까지 맑게 만들어 함께 데리고 가는 멀리 가는 물, 

우리가 배워야 할 물의 심성이다.

'멀리 가는 물'같은 사람이 많은 세상은 얼마나 맑을 것인가.

그런 세상을 꿈꾸어 보며 다시 한번 이 시를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