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10도까지 떨어졌던 2월 하순. 내복 위에 두꺼운 점퍼를 챙겨 입고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얼굴에 닿은 찬바람에는 한겨울 추위에 돋아 있던 매섭고 날카로운 가시나 이빨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여전히 춥기는 했으나 그 찬바람은 강아지가 손가락을 무는 것처럼 간지럽기도 했다.
찬바람을 맞는 순간 내 마음에서 무언가 뛰어오르는 것 같은 가벼운 기운이 느껴졌다. 두꺼운 점퍼도 조금은 무겁고 성가시게 느껴졌다. 콧구멍에 향긋한 흙냄새와 풋내가 들어오는 것 같기도 했다. 영하 10도의 바람을 맞으면서도 내 입에서는 저절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봄이다!’
봄추위는 아무리 덩치가 커도 순하다. 꽃샘추위 속에 따뜻함과 부드러움이 섞여 있다. 입춘부터 계곡과 땅속에서 얼음이 조금씩 녹고 있을 때, 겨우내 꽝꽝 얼어 있던 내 마음의 얼음도 조금씩 녹고 있었나 보다. 봄은 산이나 개울이나 나무나 풀에서만 오는 게 아니라 마음에서도 성숙되고 있었나 보다. 내 마음 어디에선가 봄이 차근차근 준비되고, 무럭무럭 자라나고, 그에 따라 몸도 점점 가벼워지고 있었나 보다. 어릴 때 불렀던 동요가 떠올랐다.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머리가 하늘까지 닿겠네’. (윤석중 시 ‘새 신’)
신발이 너덜너덜해져 ‘이젠 제발 나 좀 그만 놓아 줘’ 하고 비명을 지를 때까지 신던 시절. 새 신으로 갈아 신으면 발이 땅에서 해방되는 것 같았다.
낡고 꾀죄죄한 옷에서도 덩달아 방금 갈아입은 듯 보송보송한 향기가 났다.
허약한 몸도 배터리를 새로 갈아 끼워 에너지가 가득 충전된 새 몸으로 바뀌는 것 같았다.
힘껏 뛰어오르면 트램펄린의 반동을 온몸으로 받은 것처럼 또는 탱탱한 공이 튀어 오르는 것처럼 몸이 가볍게 솟아올랐다.
봄도 그렇게 오는 모양이다. 겨울의 완력에 단단하게 묶였던 모든 동식물들이 일시에 풀려나는 느낌. 봄 햇살이 그 결박의 끈을 툭, 풀어 주면 돌덩이처럼 딱딱해지고 무뚝뚝해지고 뻣뻣해졌던 모든 힘들이 스프링처럼 튕겨 오르는 느낌. 그 탄력의 난리! 반동의 난리! 약동의 난리! 유쾌한 난리! 통쾌한 난리! 후련한 난리! 웃음의 난리! 터져 나오는 소리의 난리! 어질어질 아지랑이의 난리! 흙이건 나뭇가지건 마구 뚫리는 초록의 난리!
“땅바닥이 뛴다, 나무가 뛴다. / 햇빛이 뛴다, 버스가 뛴다, 바람이 뛴다. / 창문이 뛴다. 비둘기가 뛴다. / 머리가 뛴다. // 잎 진 나뭇가지 사이 / 하늘의 환한 / 맨몸이 뛴다. / 허파가 뛴다.” (황인숙 ‘조깅’)
아침에 조깅하는 사람의 주변에서 함께 뛰고 있는 것들을 보라. 뛰는 발이 가벼우니까 버스도 창문도 발이 달려서 같이 뛰는 것 같다. 시인의 말처럼 모두가 “뒤꿈치가 들린 것들”이다. 제 안에 움츠리고 있던 힘들이 폭발해서 저절로 뛰지 않을 수 없는 것들이다. 들숨과 날숨이 들락날락하는 몸이 어찌나 가벼운지 “독수리 한 마리를 삼킨 것 같다”고 시인은 허풍을 떤다.
프랑스 철학자 바슐라르에 의하면, 우리 몸에는 ‘삶의 가장 깊은 본능 중의 하나인 가벼움의 본능’ 또는 ‘비상(飛上)의 본능’이 있다고 한다. 우리가 날아오르는 꿈을 꿀 때는 날개가 있어서 나는 게 아니란다. 날개가 있건 없건 먼저 날아오르고 나는 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나중에 날개가 달리는 거란다. ‘꿈꾸는 사람 자신도 원인을 알 수 없는 가벼움’이 본래 우리 안에 있기 때문이란다. (곽광수, 『가스통 바슐라르』)
지구가 아무리 더워져도, 먹고살기가 점점 힘들어져도, 세상이 갈수록 탁해지고 흉흉해져도 봄은 온다. 이불 박차고 두꺼운 옷 벗고 새 공기를 마시면서 뛰고 싶어지는 3월이다. 추위에서 풀려난 모든 것들이 날아오르고 싶어 저절로 뒤꿈치가 들리는 봄이다. 내가 뛰면 뒤꿈치가 들린 모든 것들이 함께 뛰어 줄 것 같은 봄이다. 새 신을 신고 뛰면 머리가 하늘까지 닿을 것 같은 봄이다. 너무 가벼워 날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햇빛과 공기와 바람과 나무와 창문과 땅바닥이 자꾸 같이 뛰자고 유혹하는 봄이다. 창문이 닫혀 답답하다고 허파가 소리치고 있지 않나요? 지금 콧구멍과 발바닥이 근질근질하지 않나요?
김기택 시인
[중앙일보] 입력 2012.03.08 00:00 / 수정 2012.03.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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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택 시인의 산문,
제가 시인이 쓴 산문을 좋아합니다.
비유가 강한 시적 표현이 신선해서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특히, '찬바람이 춥기는 했으나 강아지가 손가락을 무는 것처럼 간지럽다'는 표현은 얼마나 수긍이 가는지요.
봄이 오는 길목에서 사방이 근질근질 들썩들썩
약동하고 난리치는 모양을 잘 표현해 준 글이네요.
움츠린 모든 것들을 깨우고 같이 나가보자고 손짓하는 봄,
집에만 박혀 있는 사람이 왠지 불쌍해 보이는 봄입니다.
방금 시어머니께서 전화하셨어요.
"애비 데리고 나가서 소나무 밑으로 가 바람좀 쐬고 오너라."
나지막한 산에라도 가서 피톤치드를 받고 오라는 말씀이지요.
요즘 옆지기의 안구건조가 심해서 하시는 염려의 말씀입니다.
주말에 주로 집에서 TV나 보고 낮잠이나 자는 옆지기 운동 좀 시키라는 건데요,
그 '데리고 나가라'는 말을 들으니 제가 무슨 보호자라도 된 느낌이네요. ^^
안그래도 나가려던 참인데 슬슬 준비해 저 초록의 난리, 약동의 난리를 느껴 봐야지요.
"네, 가요, 갑니다!"
**위 버들강아지 사진은 지난 주말 문경새재에서 찍은 것이에요.
계곡이라지만 물이 말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