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꽃/백무산

서해기린 2012. 9. 10. 09:49

 

 

 

 

    

 

내 손길이 닿기 전에 꽃대가 흔들리고 잎을 피운다

그것이 원통하다

 

내 입김도 없이 사방으로 이슬을 부르고

향기를 피워내는구나

그것이 분하다

 

아무래도 억울한 것은

네 남은 꽃송이 다 피워내도록

들려줄 노래 하나 내게 없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내 가슴을 치는 것은

너와 나란히 꽃 피우는 것은 고사하고

내 손길마다 네가 시든다는 것이다

 

나는 위험한 물건이다

돌이나 치워주고

햇살이나 틔워주마

사랑하는 이여

 

   -백무산-  시집 <인간의 시간>에서

 

 

 

 백무산  시인

       1955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1984년 『민중시』1집에 「지옥선」등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만국의 노동자여』『동트는 미포만의 새벽을 딛고』『인간의 시간』『길은 광야의 것이다』『초심』
『길 밖의 길』등이   있으며, 이산문학상, 만해문학상, 아름다운 작가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