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자
걷자
정상미
어느 시인이 쓴 걷기예찬을 보았다. 시인 주변의 문인들이 즐겨 걷는다고 했다. 어디 작가들만 걸을까? 아줌마도 걷고 아저씨도 걷는다. 연예인도 걷고 사장님도 걷는다. 걷기 열풍이 일고 있다. 나는 골목길 걷기를 즐긴다. 그 골목에서 <곰탱이>도 만난다. 곰탱이는 반달곰처럼 가슴 위쪽에 흰색 무늬가 있는 검은 개다. 내가 산책길에 만나는 어느 집 견공이다. 몸집이 커다랗고 순해 터져서 짖지도 않는다. 지나다 곰탱아! 부르면 꼬리를 치며 얼른 달려와 낮은 담장과 엉성한 쇠 울타리 사이로 제 머리와 앞발을 올려 놓고 쓰다듬어 달라고 한다. "잘 있었어?" 손을 내밀면 내 손바닥에 제 턱을 척 올려 놓는다. 뺨을 부비기도 하고 외롭고 심심했다는 듯 깊은 눈으로 바라본다. 그 눈빛이 그윽하다.
걸으며 늘 이집 저집 기웃거린다. 마당에 뭐가 자라나, 어떤 꽂이 피었나 궁금해서다. 요즘은 능소화가 담 넘어 내려오는 집이 예쁘다. 담장 안에 갇힌 어느 궁녀의 애절한 마음이 능소화로 피었단다. 석류와 무화과가 자라는 집도 있다. 호두가 달리거나 감이 담장에 내려앉아 있기도 하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채송화나 봉숭아가 있는 집이 제일 반갑고 좋다. 옛날 우리집에서 보던 꽃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손톱에 꽃물 들이던 즐거운 때를 추억한다.
가끔은 남편이나 아이들과 말다툼을 하고 답답해져서 걷는다. 골목을 지나고 큰 길도 하나 건너 산자락에 있는 중학교까지 간다. 휴대폰 하나 달랑 들고 나와 교정 뒤 화단에서 이꽃 저꽃 찍다가 보면 어느 새 마음이 가벼워진다. 족두리꽃과 접시꽃, 바늘꽃, 부용화, 해바라기, 백일홍, 분꽃 같은 것도 있고 금귤 나무에 새도 앉았다 날아간다. 열매를 반만 파먹은 채로 남겨 두고 간다. 새 입장에서 보면 나는 침입자이자 훼방꾼, 갑자기 미안해진다. "새야! 조금만 놀다 갈 테니 이따가 다시 와서 먹어." 나비도 나폴나폴, 꿀벌도 윙윙거리며 꽃을 찾는다. 평화롭고 작은 또 하나의 세상이 거기 있다.
중학교 맞은 편에 산비탈을 깎아 세운 아파트로 들어선다.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면 맨 끝에 지인의 집이 있다. 그집 앞 화단에 있는 비비츄와 산나리가 좋아서 간다. 봄에 피었던 윤판나물은 어느새 동글동글한 열매를 달고 있다. 꼭 둥글레 같다. 목백일홍도 붉게 피었다. 하늘이 나오게 찍어야 예쁘니 무릎을 구부려 낮은 자세를 취한다. 늘 보는 하늘도 꽃 사이로 보면 언제나 새로운 하늘이다.
내려오며 공터를 만난다. 부지런한 누군가는 절대 공터를 그냥 버려 두지 않는다. 옥수수가 수염을 달고 익어간다. 도라지꽃이 흰색과 자주색으로 피어 옥수수와 잘 어울린다. 도라지꽃은 소박하면서도 예쁘다. 어릴 때 등하굣길에 봉오리를 터뜨리면 '뽁' 하는 소리가 났다. 재미있어서 자꾸 터뜨렸다. 개망초도 금오산으로 가는 언덕에 피었다. 함께 피어 더 아름다운 야생화, 바람에 잠시 하얀 물결이 인다. 내 속에 쌓였던 응어리들이 눈 녹듯 사라지고 이미 나는 행복한 사람이 되어 있다. 언제 내 안에 노여움과 서러움 따위가 있었던가?
운동을 작정하고 걸을 때는 빈손으로 걷는다. 그럴 때도 잠시 숨을 고르느라 걸음을 늦출 때는 주변의 모든 것들이 들어와 안긴다. 사람도 작은 풀꽃도 길고양이도 잠자리와 나비까지 다 보인다. 모두가 내 가족인양 정이 간다.
걸으면 사색의 공간이 펼쳐진다. 숲속이나 강, 호숫가, 들녘을 산책하면 넓고 깊은사유의 바다가 나타난다. 골목길도 그에 못지않다. 시인에게 시상이 떠오르고 작곡가에겐 악상이 떠오르기도 하겠다. 고민거리도 술술 잘 풀린다. 마침 어디나 할 것 없이 둘레길 같은 산책로들이 잘 조성되어 있어 걷기환경은 더없이 좋아졌다. 걸으면 몸도 마음도 다 건강해 진다. 걷자. 자주 걷자.
*** 지난 여름에 김기택 시인이 쓴 걷기예찬에 대한 글을 옮기며 밑에 덧붙여 썼던 글을 조금 손질해서 내 수필 & 산문 카테고리에 올려 봅니다. 요즘이 딱 걷기 좋은 때입니다. 자주 걷고 많이 걸읍시다.
저는 어제도 오늘도 걸었습니다.
어제는 구미 시내에서 집까지 걸었고 오늘은 올림픽수영장에 차를 대고 금오지를 지나 자연학습원까지 왕복했지요.
본격적인 행락철로 접어들어서인지 전국에서 모인 관광버스가 엄청 많더군요.
마침 녹색문화제 행사가 있어 가수 김종환의 노래 사랑을 위하여,도 듣고 사진도 찍었습니다.
작은 국화 화분도 하나 받았지요.
화살나무나 감나무는 이미 단풍이 들기 시작했구요, 꽃개미취가 연보라빛 세상을 만들어 황홀할 지경이었습니다.
참! 제가 사는 구미가 요즘 연일 뉴스에 나오고 있습니다. 불산가스 누출사고 때문이지요.
저야 금오산 자락 아래 주택가에 살아 안전합니다만 제가 방과후학교 강사로 나가는 4공단 근처에는 요즘 난리입니다.
학교는 다소 떨어져서 괜찮은 것 같지만 인근 산동지역주민들은 정말 피해가 큰 줄로 압니다.
세상은 좁아서 제 문우(文友) 아들의 친구가 해당공장 근로자였다가 이번에 희생을 당해 세상을 달리 했다 합니다.
내년에 결혼할 예정이었다는데 그 어머니가 문상 온 아들 친구들을 붙들고 아들이 어디서 잘 있다,는 말 한마디만 해 주면 살겠다며
오열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에게는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피해를 입은 주민들은 이주를 시작했다던데
구미시나 정부의 대처가 미흡하고 늦기는 했지만 부디 신속하고 원만한 해결을 봤으면 하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