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냇물에 철조망/최정례

서해기린 2013. 2. 1. 02:09

 

냇물에 철조망 

           

          

우리 모두는 사랑하는 이를 향하여 흐르는 강물이다

 

어제는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아닌 것 같다

 

조금 바람이 불었는데

한 가지에 나뭇잎, 잎이

서로 다른 곳을 보며 춤을 추고 있다

 

저 너머 하늘에

재난 속에서 허덕이다가 조용히 정신을 차린 것 같은 모습으로

구름도 흘러가고 있다

 

공중에서 무슨 형이상학적 추수를 하는 것 같다

 

 

   -최정례-

 

 

                                                                                                     -구미 지산샛강-                 출처 : 너나들이님 블로그

 

 

 

최정례 : 시인.  1955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남. 시집 『내 귓속의 장대나무 숲』『햇빛 속에 호랑이』『붉은 밭』『

            레바논 감정』『캥거루는 캥거루고 나는 나인데』, 시평집 『시여, 살아 있다면 실컷 실패하라』 등이 있음.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영화 〈 봄날은 간다 〉에서 이 대사를 읊은 주인공처럼 풋풋하게 젊은 남자가 아니더라도, 사랑의 백전노장이 아니라면,

대부분 사람은 변하지 않는 게 사랑의 속성이라는 환상을, 미신을 갖고 있다. 그러나 모든 감정처럼, 사랑이라는 감정도

계속 움직인다. ‘우리 모두는 사랑하는 이를 향하여 흐르는 강물’이지만, 그 흐름이 향하는 ‘사랑하는 이’가 바뀔 수 있다.

그럴 뿐 아니라 그 강물의 온도도 늘 같지 않다. 어느 날은 90도까지 올라가기도 하지만, 대개는 60도나 70도고, 때로

30도로 내려가는 날도 있다. 물은 100도가 돼야 끓는다. 99도에도 끓지 않는다. 펄펄 끓어본 적이 있는 사람은 90도의

사랑에도 사랑이 변했다고 느낀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늘 움직이고 변하게 마련인 사랑의 속성에 마음이 불안하게 요동친다.

‘조금 바람이 불었는데/한 가지에 나뭇잎, 잎이/서로 다른 곳을 보며 다른 춤을 추고 있다’잖은가. 그러한 즉, 재난 속에서

허덕이는 것처럼 힘들다. 온도가 낮아도 일정하기라도 하면 허전한대로 버티거나 집어치우련만, 80도였다 20도였다 급히

오르내리면 놓고 싶어도 놓지 못하고 신경쇠약으로 치닫는다. 그리하여 냇물에 철조망이 어룽거린다.
 

              -사이버 문학광장  <황인숙의 시배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