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할아버지 불알/ 어떻게 참을까?-김창완의 동시

서해기린 2013. 4. 19. 11:18

 

 

 

할아버지 참 바보 같다

불알이 다 보이는데

쭈그리고 앉아서 발톱만 깎는다

시커먼 불알

 

-  할아버지 불알 / 김창완 -

 

 

 

                                                                                                                                    아파트 옆 명자꽃

 

 

 

꽃에 벌이 날아와 앉았다

털이 북실북실한 다리로 꽃술을 막 헤집었다

간지러울 텐데

긁을 수도 없고

어떻게 참을까?

꽃에 나비가 날아와 앉았다

긴 대롱을 꽃받침까지 밀어 넣었다

재채기가 날 법도 한데

어떻게 참을까?

그래서 꽃잎이 흔들렸나?

재채기 참느라고

 

- 어떻게 참을까? / 김창완 -

 

 

 

                                                                                                                                                        조팝이 팡팡 터졌네요.

 

 

 

 

가수 겸 연기자 김창완이 동시로 등단했다. 그는 재주도 많다.

이번 동시는 우습기도 하고 호기심 많은 그 특유의 아이 같은 눈높이로 본 천진스러움이 묻어난다.

 

이십대 시절 자취방에서 나는 그가 이끄는 그룹 <산울림>의 노래를 자주 흥얼거렸다.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청춘>

길을 걸었지 누군가 옆에 있다고 느꼈을 때 난 알아버렸네 이미 그대 떠난 후라는 걸~       <독백>

나 어떡해 너 갑자기 가 버리면 그건 안돼 정말 안돼 가지말아~      <나 어떡해>

너의 그 한 마디 말도 그 웃음도 나에겐 커다란 의미~     <너의 의미> ......  같은 것들이다.

 

멜로디며 가사며 그렇게 내 마음속으로 쏙 들어와 안긴 것은 없었다.

그러던 그가 나중에는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보니 한 귀퉁이에 고등어가 소금에 절여져 있네~ ' 의 <어머니와 고등어>를

가지고 나와 서민들의 마음을 달래주기도 했다. 

<산울림>과 김창완, 그들의 노래속으로 들어가다 보면 내 젊은 시절이 아련하게 떠오르고 그리워진다.

 

 

 

                                                                                                                                                           

 

 

 

[지평선/3월 28일] 김창완의 동시

 

한국일보. 이준희 논설실장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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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다 보면 괜히 눈물 나는 노래들이 있다. '산울림'의 <어머니가 참 좋다>도 그렇다. '장에 가신 어머니를 찾다 길을 잃었지/ 파출소에 혼자 앉아 울다 어머니를 보았지/ 나를 찾은 어머니는 나를 때리면서/ 어디 갔었니 이 자식아/ 속 좀 엔간히 태워라/ 나는 참 좋다/ 때리는 어머니가 참 좋다/ 어머니의 눈물이 참 좋다/ 어머니가 너무나 좋다 …' 어릴 적 속깨나 썩이던 우리를 혼내던 기억이, 이젠 너무 연로해지신 모습에 겹쳐 매번 목이 메인다.

■ 1977년 '산울림'의 등장은 한국 대중음악계의 사건이었다. 그 이전, 이후에도 한 음악인이 그토록 다양한 음악적 색깔을 보여준 적은 없었다. 전문가들은 록, 펑크, 사이키델릭, 발라드 등 장르로 묶지만 사실은 20여 앨범의 수백 곡 거의가 세상 어디에도 없던 첫 음악이었다. 더 놀라운 건 가사다. 누구나 익숙한, 그러면서도 딱 집어내지 못한 일상의 느낌을, 전혀 포장하지 않은 일상의 언어에 기막히게 담아낸 실력은 가히 천재적이다.

 
■ 특히 동요적 감수성은 압권이다. 산마루의 구름을 벗겨보고 싶은 아이 마음을 그린 <산할아버지> 나 <개구쟁이> 같은 동요가 히트한 사례도 전무후무할 것이다. 그 '산울림'의 김창완이 동시를 썼다 해서 구해 읽었다. '할아버지 참 바보 같다/ 불알이 다 보이는데/ 쭈그리고 앉아서 발톱만 깎는다/ 시커먼 불알'(<할아버지 불알>). 세상에, 어떻게 이런 착안을. 이상하단 표정으로 할아버지를 빤히 보는 아이 모습이 떠올려져 그냥 뒤로 넘어갔다.

■ 벌 나비가 날아와 꽃을 마구 헤집는 걸 보는 아이의 시선도 절묘하다. '… 그래서 꽃잎이 흔들렸나?/ 재채기 참느라고'(<어떻게 참을까?> 중). 어른의 눈으로 읽어낸 동심이 아니다. 그야말로 어린아이와 같은 눈높이를 갖지 않고는 접할 수 없는 세계다. 환갑에 가까운 나이(그는 1954년생이다)를 생각하면 더욱 경이롭다. 덕분에 세파에 찌들어 탁해진 심신이 한줄기 청량한 바람을 쐰 듯 말개졌다. 그의 동시는 격월간지 <동시마중> 3ㆍ4월호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