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불알/ 어떻게 참을까?-김창완의 동시
할아버지 참 바보 같다
불알이 다 보이는데
쭈그리고 앉아서 발톱만 깎는다
시커먼 불알
- 할아버지 불알 / 김창완 -
아파트 옆 명자꽃
꽃에 벌이 날아와 앉았다
털이 북실북실한 다리로 꽃술을 막 헤집었다
간지러울 텐데
긁을 수도 없고
어떻게 참을까?
꽃에 나비가 날아와 앉았다
긴 대롱을 꽃받침까지 밀어 넣었다
재채기가 날 법도 한데
어떻게 참을까?
그래서 꽃잎이 흔들렸나?
재채기 참느라고
- 어떻게 참을까? / 김창완 -
조팝이 팡팡 터졌네요.
가수 겸 연기자 김창완이 동시로 등단했다. 그는 재주도 많다.
이번 동시는 우습기도 하고 호기심 많은 그 특유의 아이 같은 눈높이로 본 천진스러움이 묻어난다.
이십대 시절 자취방에서 나는 그가 이끄는 그룹 <산울림>의 노래를 자주 흥얼거렸다.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청춘>
길을 걸었지 누군가 옆에 있다고 느꼈을 때 난 알아버렸네 이미 그대 떠난 후라는 걸~ <독백>
나 어떡해 너 갑자기 가 버리면 그건 안돼 정말 안돼 가지말아~ <나 어떡해>
너의 그 한 마디 말도 그 웃음도 나에겐 커다란 의미~ <너의 의미> ...... 같은 것들이다.
멜로디며 가사며 그렇게 내 마음속으로 쏙 들어와 안긴 것은 없었다.
그러던 그가 나중에는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보니 한 귀퉁이에 고등어가 소금에 절여져 있네~ ' 의 <어머니와 고등어>를
가지고 나와 서민들의 마음을 달래주기도 했다.
<산울림>과 김창완, 그들의 노래속으로 들어가다 보면 내 젊은 시절이 아련하게 떠오르고 그리워진다.
[지평선/3월 28일] 김창완의 동시
한국일보. 이준희 논설실장 junlee@hk.co.kr
■ 1977년 '산울림'의 등장은 한국 대중음악계의 사건이었다. 그 이전, 이후에도 한 음악인이 그토록 다양한 음악적 색깔을 보여준 적은 없었다. 전문가들은 록, 펑크, 사이키델릭, 발라드 등 장르로 묶지만 사실은 20여 앨범의 수백 곡 거의가 세상 어디에도 없던 첫 음악이었다. 더 놀라운 건 가사다. 누구나 익숙한, 그러면서도 딱 집어내지 못한 일상의 느낌을, 전혀 포장하지 않은 일상의 언어에 기막히게 담아낸 실력은 가히 천재적이다.
■ 특히 동요적 감수성은 압권이다. 산마루의 구름을 벗겨보고 싶은 아이 마음을 그린 <산할아버지> 나 <개구쟁이> 같은 동요가 히트한 사례도 전무후무할 것이다. 그 '산울림'의 김창완이 동시를 썼다 해서 구해 읽었다. '할아버지 참 바보 같다/ 불알이 다 보이는데/ 쭈그리고 앉아서 발톱만 깎는다/ 시커먼 불알'(<할아버지 불알>). 세상에, 어떻게 이런 착안을. 이상하단 표정으로 할아버지를 빤히 보는 아이 모습이 떠올려져 그냥 뒤로 넘어갔다.
■ 벌 나비가 날아와 꽃을 마구 헤집는 걸 보는 아이의 시선도 절묘하다. '… 그래서 꽃잎이 흔들렸나?/ 재채기 참느라고'(<어떻게 참을까?> 중). 어른의 눈으로 읽어낸 동심이 아니다. 그야말로 어린아이와 같은 눈높이를 갖지 않고는 접할 수 없는 세계다. 환갑에 가까운 나이(그는 1954년생이다)를 생각하면 더욱 경이롭다. 덕분에 세파에 찌들어 탁해진 심신이 한줄기 청량한 바람을 쐰 듯 말개졌다. 그의 동시는 격월간지 <동시마중> 3ㆍ4월호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