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미 수필 & 산문

바랜 장미 꽃바구니

서해기린 2013. 12. 13. 11:58

 

 

 

바랜 장미 꽃바구니

                                        

                                  정상미

 

 

 

“장미가 이렇게 변하기도 하나? 아주 탈색되었네.”

남편이 불쑥 말했다. 금방이라도 퀴퀴한 냄새를 뿜을 것 같은 재활용 휴지 같은 색. 거실 입구에 놓아둔 꽃바구니 속 장미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것은 8개월 전 결혼기념일에 받은 것으로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분홍 장미가 안개꽃 사이사이에서 도도하고도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아래쪽에는 편백 잎을 거느린 채 한동안 달콤하고 그윽한 향기를 뿜었다. 나는 저런 장미가 되고 싶었다. 섹시하고 뻐기는 것 같지만 향내가 깊고 가시도 있는. 시간이 흘러 꽃은 마르기 시작했다. 장미는 말라도 일정기간 색을 유지해서 꽃바구니를 그대로 두었다.

 

분홍색은 언제부터인지 점점 옅어져 미색이 되었다. 미색 장미도 편백과 안개꽃에 잘 어울렸다. 분홍이 섹시하고 달콤하다면 미색은 순수하고 품격이 있어 보였다. 언제부터인가 장미는 더욱 바래져 조화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이 그렇게 색을 잃어가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그동안 정이 들었는지 버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색은 바래졌어도 꽃은 꽃이라 봐 줄만 했다.

 

가시에 찔릴 것을 염려해 손바닥이 빨갛게 코팅된 목장갑을 끼고 가위로 자르며 바구니를 정리한다. 마른 꽃을 버릴 때만큼 싫은 순간도 없다. 쓰레기 중의 쓰레기가 그것이다. 부피도 많이 차지할 뿐더러 꽃은 피면 반드시 시든다는 진리를 깨닫게 해줘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내 사랑이 그러했다. 뜨겁던, 그 무엇도 녹일 수 있을 것 같았던 그와의 사랑도 식어 지금은 미지근하다. 그 사랑의 불빛은 세월 따라 바래져 이제는 붉은 근처도 가지 못하는 것 같다. 견고했던 그와 나 사이에 놓인 사랑의 끈도 금오지 방둑에 걸쳐진 나일론 밧줄처럼 부스러기가 묻어난다. 경계가 허물어지고 틀어지기도 한다.

 

바래진 장미를 보니 문득 위기의 여자였던 한 시절이 떠오른다. 우리의 싸움은 거의 한 가지 이유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바로바로 정리가 되어야 하고 나는 그러지 못해서이다. 딸아이 방이 지나치게 지저분해져 있으면 그 불똥이 내게로 튀었다. 엄마가 그러니 아이도 그렇다는 것이다. 그 말이 백 프로 맞는 것도 아니고 백 프로 틀렸다고도 할 수 없다. 어쨌든 그 말을 들으면 나는 왜 그리도 화가 나던지.

 

정리정돈을 두고 말하자면 내가 보통이나 그 약간 이하인 것 같고 그는 깔끔주의자, 딸은 도대체 정리가 되지 않는 부류다. 딸애는 바지나 스타킹, 양말 따위를 뱀허물 벗듯이 동그랗게 둔 채 몸만 빠져나오기도 하고 무엇이든 죄다 책상이나 방바닥에 늘어놓기 대장이다.

 

딸이 지난 자리는 흔적이 남는다. 아무리 얘기해도 잘 고쳐지지 않았다. 보다 못해 내가 치워주다 한 번쯤 거르는 날이면 그가 태클을 걸어온다. 그가 매일같이 그랬던 것은 아니다. 어쩌면 직장에서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힘들 때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퇴근해 왔는데 집이 깔끔하면 마음이 편하고 그러지 못하면 답답해진다고 했다. 그래서 저녁 무렵만 되면 우리 집에는 비상이 걸렸다.

 

“아빠 오실 때 됐다. 자, 치우자 빨리빨리!”

그때는 아이가 어려서 더 자주 어질렀고 나는 왔다 갔다 하며 아이들을 닦달하고 집안을 정리했다. 네 식구 사는데 뭐 그리 치울 게 많은지, 장난감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뱀 같은 머리카락은 어찌 그리도 잘 떨어지고 먼지는 자주 쌓이는지.

내가 게으름을 피우다가 또는 외출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집안 상태가 좋지 않을 때면 한 번씩 그는 폭발했다. 그러면 온 집안에 냉기류가 흐르고 숨이 턱턱 막혀왔다. 자주 그러지는 않았다 해도 종종 그런 일이 있었다. 그렇게는 서로 피곤해서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를 바꾸는 것이 어렵고 딸아이도 마음대로 되지 않아 나만 피곤할 것 같았다. 평생을 그런 식으로 살아갈 자신이 없어졌다. 그 무렵 그와 나는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하고 자주 삐걱거렸다. 그의 입에서 칼 같은 말이 튀어 나왔다.

“이런 식으로 어떻게 평생을 파트너로 살겠나?”

아, 그 말은 내 속에 있던 말, 헤어지자는 말, 나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막상 그에게서 들으니 얼음물을 덮어쓴 것처럼 차갑게 굳어졌다. 결국 헤어질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혼자 살아갈 자신은 없었지만 ‘어떻게든 살아지겠지’ 하며 아이들 양육비를 준다면 갈라서겠다고 했다.

 

내 말에 그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오히려 이런 내 태도에 그가 더 서운해 하는 것 같았다. 나중에야 그 말이 서로에게 엄포임을 알았지만 그때의 상처가 오랫동안 되새겨지곤 했다.

 

바래진다는 것은 상처가 될 수도 있으나 반대로 상처를 아물게도 한다. 가시 박힌 말에 생채기가 깊게 나 있었지만 숱한 시간을 함께 살아오며 옹이는 조금씩 희미해지고 사그라지고 말았다. 고등학생이 되어서이기도 하겠지만 지금은 딸아이의 정리습관이 좋아졌다. 완벽을 추구하던 그에게도 여유가 생겼으며 나도 미루는 습관이 줄어들었다. 한 번 잘못 길들여진 습관을 바로잡기란 쉽지 않겠지만 서로 조금씩 배려해서 나아지고 있다.

 

싹둑싹둑 잘려진 조화 같은 장미며 안개꽃과 편백 잎 잔해가 펴놓은 신문지 위에 수북하다. 바래져 더 이상 꽃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것들을 쓰레기봉투에 담으며 내 삐걱거리던 시절의 상처도 같이 쓸어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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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아침에 눈이 내렸길래 찍어 봤어요.                            사람이 다니는 길은 경비 아저씨들이 다 치워서 깨끗하네요.                            다닐 때 미끄러운 건 미끄러운 거고  눈은 눈이지요.                            하얗게 내린 눈은 언제 봐도 반갑고 그리움이 함께 내린 것 같아 설레입니다.

 

 

 

 

 

 

 

             어떤 글은 쓰고 나서 읽으면              사람들이 이걸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싶어서 내놓기가 망설여지기도 합니다.             이 글은 남편에게도 아직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본인 얘기가 들어있어 건네주기가 망설여지네요.             <구미수필> 책이 돌아다녀도 그 사람은 집어들어 보는 일도 없네요.              그는 제 글이나 블로그에 관심이 없어요.               시는 어쩌다 보여주기도 하는데 조금만 길어도 눈 아프다고 손사래를 치는 바람에 저도 영 내키지 않거든요.             아들도 딸도 남편도 제 글에 도통 관심이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점이 편하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