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미 수필 & 산문

금광을 발견하다

서해기린 2011. 6. 25. 03:20

 

 

 

 

  

    “이거 길이 와 이렇노? 여기 거미줄 봐라”

    “이 가시덤불은 또 머꼬? 이거 길 맞나?”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분명 길이 있었는데 내려올수록 잡초에 가시덤불에

거미줄하며 방향조차 분간하기 힘들었다.

    초가을이었다. 바람과 햇살이 하도 좋아서 옆 동 사는 Y와 금오산 자락에 올랐다가 하산

하는 길이었다. 이 부근 지리나 방향에 대해 나름 자신이 없는 것도 아니어서 나뭇가지를

꺾어 장애물을 헤쳐 나가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헤매다보니 아래로 가는 게 아니라 옆

으로만 가는 것도 같고 여차하면 119에 전화를 할 마음도 먹었다. 상황은 점점 심각해졌다.

    그 때, 멀리 학교 건물 같은 것이 보이고 묘지와 밭도 보이기 시작했다. 반갑고 다행스러

웠다. 발걸음이 점점 가벼워졌다. 발아래 밤 껍질이 밟혔다. 위를 보니 커다란 밤나무에 밤

송이가 주렁주렁했다. 벌어져 알밤이 보이는 것도 있고 아직 덜 익은 것과 갈색 밤송이들이

섞여서 많이도 달려 있었다. 갖은 고생 끝에 금광이라도 발견한 것 같았다. 밤송이에 손을

찔려가며 밤을 빼내고 여기저기 흩어진 알밤을 주웠다. 장대를 만들어 털어도 봤다. 워낙에

나무가 크고 높아서 많이 딸 수 없었다.

    어린 시절에도 밤을 주웠다. 우리 집 밭엔 큰 밭 작은 밭 할 것 없이 밤나무가 여러 그루

있었다. 어느 날 큰 밭둑 꼭대기에 있는 제일 큰 밤나무에 아버지가 올라 밤을 털고 우리

형제들은 집게를 하나씩 들고 줍고 있었다. 한번 장대로 털면 후드득 알밤이 빠지거나 밤송

이가 탁, 툭, 하고 떨어졌다. 밤송이 하나가 내 등에 떨어졌다. 기겁을 하고 울었다. 커다란

몽둥이로 후려치는 것 같았다. 옷을 들추어 본 언니도 놀라는 것 같았다.

    “아부지요! 상미 등에 뚱그렇게 가시가 박히고 빨개요”

  아버지는 황급히 나무를 타고 내려오셨다. 그러나 굵고 투박한 손가락으로는 가시를 빼기

가 어려운 것 같았다.

    “마이 아푸지? 얼른 엄마한테 가라. 난숙아 니가 빨리 엄마한테 딜다 조라.”

  엄마를 보자 더 크게 울었다. 엄마도 놀라시는 것 같았다.

    “아이구! 이거 밤 털다가 애 잡겠네.”

  그러고는 바늘을 소독약에 묻혀서 하나하나 가시를 빼주셨다. 얼마나 긴장되고 아팠던지

지금도 아찔하다.

    그런 이야기를 하며 밤을 줍다보니 배낭이 꽉 차서 더 이상 담을 데가 없었다. 밤은 각자

한 됫박은 족히 넘을 듯 했다. 그 정도로 하고 묘지와 밭을 찾아 내려왔다. 그 밭에 감나무,

밤나무가 가득하고 채소와 과일들이 없는 게 없었다. 국화와 과꽃, 샤르비아 등 온갖 꽃들

로 가득 둘러싸인 곳에 집도 한 채 있었다. 내 눈에 그 집은 명당 중에 명당이었다. 무릉도

원만 같았다. 제 2의 노다지였다.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60대의 할머니가 우리를

반겼다. 듣기 좋게 그냥 아주머니라 불렀다.

   “아이구! 거긴 길도 아인데 걸루 왔나? 겁도 없데이.”

    “안 그래도 고생 마이 했어요.”

  가끔 길 잃은 사람들이 우리처럼 내려온다고 하니 다음에 올라가서 [길이 아님] [가지 말

것]이라 쓴 리본이라도 나뭇가지에 묶어 두리라.

    아주머니는 사람이 그리운지 쉬어가게 하고 먹을 것을 주셨다. 단감을 따서 씻어서 먹어

보라고 주더니 집에 갈 때 가져가라며 검은 비닐봉지에 듬뿍 담아 주셨다. 아직 조금 덜익

은 듯 했지만 달고 떫지 않았다.

    “아주머니 이것 좀 드세요. 한방차라요. 몸에 좋대요.”

    “아유 이런 것도 다 주고.”

    “아저씬 어디 가셨어요?”

    “저 아래 마실가고 없어. 맨날 나혼자 있지 머.”

    아주머니에게서 외로움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 평상에는 햇고추가 가을 햇볕에 곱게 말라

가고 마당 한쪽에서 하얀 진돗개 한 마리가 우릴 쳐다보고 있었다. 집주변 넓은 밭과 산들

이 다 자기네 땅이며 묘지도 자기네 조상 묘란다. 우리가 주워온 밤도 아주머니네 것이었

다. 산속 밤은 보는 사람이 임자라며 웃었다. 따지도 못하고 딸 시간도 없다고 하면서. 애호

박이며 호박잎도, 밤과 감도 많이 주셨다. 배낭에 밤이 있었지만 또 받았다.

    “아주머니! 뭐 좋아하세요? 다음에 사 올게요.”

    “사긴 뭘 사. 그냥 오지. 아이구 그럴려면 오지마레이.”

아주머니는 팔을 내저었다.  

    발걸음이 가볍고 콧노래가 절로 났다. 밤을 주운 것도 그렇지만 마음이 따뜻한 아주머니

와 그 집 풍경이 자꾸 떠오른다. 도시에서 그렇게 가까운 곳에 별천지 같은 곳이 있었다니

꿈만 같다. 생각할수록 가슴이 따스해지며 미소가 번진다. 진짜 금광의 발견은 이처럼 마음

속에 값지고 귀한 경험을 간직하게 된 것 아닐까.

 

 

 

* 주의: 딜다-데려다 /  아인데-아닌데 /  걸루-그리로 / 마이-많이 / 마실-마을

 

              **  2001년 [산행이 주는 기쁨]이란 제목으로 이보다 더 길게 썼던 것을 2010년에 제목을 바꾸고 분량을 줄여 다시 써 봤

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