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벚꽃, 아프다 / 이규리
서해기린
2016. 11. 19. 00:09
벚꽃, 아프다 / 이규리
봄이라는 조산원
애비가 누군지도 모른 채
느닷없이 임신하고 곧이어 분만했네
조산인가 봐
병원 복도 같은 군산 가도
간호사들이 뛰어가고 달려오고
종일 구급차가 지나가네
들어선 애도 떨어지겠네
숨은 애비들은 다 누구야
특수 조명 탓인가
마주치는 얼굴들 다 흰죽 같아
흐드러진 꽃 아래 이곳저곳 맘 솔기가 툭툭 터지네
옆사람
손을 잡고 풀쩍풀쩍 뛰었는대
끌어안고 어디 물컹 닿았는데
나중에 보니 모르는 사람이네
살아 반짝하는 날 며칠이냐고
내일은 내일 걱정하자고
간덩이까지 훤해지는 날
추억은 이렇게 남기는 거야
손바닥만한 디카 속으로
카메라폰 속으로
꽃인 듯 사람인 듯 쭉쭉 빨아들이며
돌아갈 일 걱정도 않고
조산아들 종일 햇볕에 뉘어 놓으며
-시집 <뒷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