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미 수필 & 산문

좀 편하려다가

서해기린 2011. 6. 28. 16:24

 

 

 

        

         좀 편하려다가

 

 

 

평소 내가 만드는 순두부 찌개도 담백하기는 했다. 내 스타일은 바지락이나 굴을 넣고 끝에 김치를 약간 썰어 넣는 것이다.

그런데 편하다는 이유로 어쩌다 한 번씩 이마트에서 파는 반제품 순두부해물탕을 사기도 한다. 이것을 먹고 나면 조미료

냄새가 강해 '다시는 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그제는 한 팩을 덜렁 집어 들었다.

 

어제 아침이었다. 그젯밤 딸애 방 구조를 바꾸면서 하루 종일 정리하고 밤 늦게까지 옷이며 책을 분류하고 버릴 것 따로 놓고

하다가 새벽 2시 반에야 잠이 들었다. 기상 시간은 6시 반인데 4시간 잤으니 당연히 피로가 따라붙었다. 하여 그 순두부해물탕

으로 간편 요리를 했다. 절차대로 넣다가 마지막에 쭈꾸미와 바지락 조개 몇 개를 씻어 넣고 팽이 버섯과 순두부와 파도 넣어

보글보글 끓기 시작했다.

 

그런데 조개 대여섯 마리중 다 벌렸는데 한 개가 입을 오므리고 있는 게 아닌가. 요녀석 잘못된 건가 싶어 숟가락으로 담아 싱

크대에 툭 놓는데 시커먼 뻘진흙이 쏟아져 나왔다. 아뿔사! 찌개는 무사한가 모르겠다. 벌어진 건 싱크대 바닥에서이니 괜찮겠

지 하며 그에게도 딸에게도 한 사발씩 떠 주었다. 나중에 보니 그는 건더기를 많이 남겼고 딸은 거의 다 남겼다. 누구도 아무

말은 없었는데 아침엔 국물만 먹을 때도 많으니… 딸은 워낙 국을 잘 안 먹는다. 여느 때처럼 많이 남았으니 그러려니 했다.

 

다 보내고 나혼자 탕을 데워 먹으려는데 끓는 순두부 위로 약간의 진흙뻘이 자꾸 들러붙는 게 보였다. 내심 불안해 하며 먹어

보니 이래도 씹히고 저래도 버적거려 도저히 성가셔서 못먹겠다. 하는 수 없이 다 버렸다. 밑에 남은 것이라 내 것만 그랬는지

다른 식구들 것도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찝찝하고 가족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놈의 죽은 조개 한 마리가 개펄 흙을

잔뜩 앙다물고 있었을 줄이야. 내가 다시 순두부해물탕을 사나 봐라.

 

 살아가면서 정도를 걷지 않고 이리저리 빠져나갈 궁리를 한다던가 요령을 부리면 오히려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 오늘일이

그렇다. 조금 편하려다가 낭패를 본 셈이다. 무슨 일이든지 처음부터 차근차근 해야 제대로 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