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염소/김기산

서해기린 2011. 7. 5. 11:39

 

 

 

 

 

 

염소 / 김기산

 

처음에는 산에 살았고

후에 들의 神이 되었다

 

 

인간이 쳐놓은 그물에 걸려들면서

목이 묶이는 노예가 되었고

지금까지 가축의 멍에를 쓰고 산다

 

 

늘 도수 높은 안경을 끼고

희고 까만 두루마기를 두르고

푸른 풀밭의 경전을 읽는다

오물오물 종이를 씹으며

수행을 되새김질 한다

 

한참씩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은

떠나온 하늘 지도를 잊지 않으려는 것

 

싸락눈 맞으면서도 산기슭으로 향하는 것은

수도자의 본성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유일한 무기는 뿔이지만

그는, 무저항의 기사

 

그의 영혼이 맑디맑아

언제나 애기울음으로 운다

그의 조상은 하늘의 성직자였다

   

                          시집 <노을을 베끼다> 2011. 도서출판 한터 

 

처음에 산에 살았던 염소는 후에 들에서 살다가 인간의 그물에 걸려 노예로,

가축으로 살게 되었나 봅니다.

도수높은 안경을 쓰고 푸른 풀밭에서 경전을 읽는 염소,  

수도자의 본성이 남아 산기슭으로 향하는,

영혼이 맑아 늘 애기울음으로 사는 그 순진무구한...

 

내 영혼은 어떤지 생각해 봅니다.

다음에 이 영혼을 만나면

 나도 아이처럼 맑은 영혼으로 돌아가 눈맞춰 보렵니다. 

 

김기산 시인 

 

성균관대 영어영문과 졸업. 동대학원 석사과정 수료 

월간 <문예사조>로 등단 

2011년 시집 <노을을 베끼다>

서울 서문여중 교장 역임   

도서출판 '한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