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노을 / 송재학

서해기린 2020. 9. 11. 00:22

 

 

 

   노을 / 송재학

 

 


   한 사내가 노을에 손을 넣어 얼굴을 더듬는 거지 붉은 물고기가 여기까지 튀어올라 퍼득인다 말더듬이지만 색을 만지며 아가미 호흡이 더 익숙하다는 것을 이해하는 시간들, 누구나 스스로의 피의 쓸모가 어떤지 알고, 피가 어떻게 굳어가는지 피가 무엇과 비슷한지 최대치의 출혈과 마주친다 버려지고 하찮은 것들, 이를테면 동전이나 압핀마저 들불처럼 부풀고 대담해지면 이승에 없는 눈이 생긴다 너덜너덜 기운 것 깉은 습도 때문에 사람의 체온부터 서랍에 저장한다 언제나 새떼가 가져왔기에 소란마저 헹구어지면서 노을의 지층이 된다 익사체도 날짜도 그곳의 늑골을 빌리고서야 숨을 수 있는


   《시와세계 》2020년 여름호
   《시향 》2020년 가을호 재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