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틀린 문장 / 권상진

서해기린 2020. 10. 8. 16:36

틀린 문장

권상진



적막은 나에게 틀린 문장을 주었다
상형도 표의도 아닌 미완의 문자들이
한참을 생각처럼 고이다가
눈에서 턱 밑으로 써 내려가는 짧은 문장

눈물을 소리 내어 읽어 본 사람은 안다
스타카토의 낯선 문법으로 변주된
단조풍 문장은 처음부터
주어도 술어도 없는 틀린 문장이란 것을

몰래 혼자서 쓰던 문장이었지만
들키듯 누군가에게 읽힐 때 ,
그때마다 오독되는 나는
흐르지 않는 단단한 문체로 다시 습작 되어야 한다

흘린 문장에 내가 씻긴다
나는 후련하고, 나는 정갈하고
나는 인간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