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트럴파크의 계수나무
센트럴파크의 계수나무
정상미
도심 속 작은 숲 센트럴파크에는 나무가 많다. 내가 좋아하는 나무는 자작나무와 칠엽수, 대왕참나무, 메타세콰이어, 이팝나무, 키 큰 금강송, 모과나무, 매화나무, 조팝나무…, 어느 나무나 꽃이든 그 나름대로 매력이 있어 다 좋아한다. 산책하며 나무나 꽃, 풀까지 눈여겨보는 편인데 어느 날 이파리 모양이 독특한 나무를 만났다.
나는 시골에서 자랐고 평소 식물에 관심이 많아 나무나 풀의 이름을 제법 많이 알고 있는 편에 속한다. 종종 처음 보는 나무나 꽃을 만나면 궁금해서 이름을 알고 싶어 안달이 난다. 잎이 예쁜 하트 모양인 이 나무는 자작나무나 소나무만큼 많지는 않았지만 제법 몇 그루가 보였다.
이름이 뭘까 궁금해하던 차에 어느 날 드디어 명찰을 단 나무를 보았고 그 나무가 계수나무란 걸 알았다. ‘계수나무? 달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문득 어릴 때 부르던 동요 <반달>이 생각났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그러니까 내 기억 속에서 계수나무는 반달 쪽배에 토끼와 같이 타고 서쪽으로 가는 나무인데 그림만 그려지고 본 적이 없으니 막연히 그냥 어떤 나무였다. 밤하늘에서 달을 보면 거무스레한 무엇이 토끼와 계수나무라 생각되는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잘 지워지지 않는 이미지다.
계수나무란 이름이 참 반가웠다. 그 후로 공원에만 가면 꼭 눈도장을 찍고 이파리가 몇 개나 나왔는지 초록이 얼마나 짙어지는지 봄부터 사랑을 듬뿍 쏟는 것이다. 바람이라도 살짝 불면 나에게 하트를 흔들어대는데 기분이 그리 좋을 수가 없다. 누가 나에게 이렇게 많은 하트를 날려주겠는가. 갈 때마다 들여다보며 사진을 찍기도 하고 좋은 사람에게 그 사진을 보내기도 한다. 정면의 하트, 측면인 하트, 뒤집힌 하트, 줄줄이 하트, 하트, 하트….
사랑스런 하트들은 바다 인공호수나 하늘을 배경으로 한쪽에 한옥마을 혹은 하늘을 찌를 듯이 솟은 포스코타워(구 동북아무역타워, North east Asia Trade Tower, NEAT Tower) 사이에서 흔들린다. 휴일에는 카누나 보트를 타는 사람들을 배경으로 하트를 쏘고, 밤에도 은은한 조명 아래 사랑을 나눠준다.
같이 산책을 하는 딸과 남편에게도 꼭 계수나무를 보여 준다. 이 하트들을 보라고. 따듯해지지 않느냐고. 가을이면 하트들이 노랗게 치장을 한다. 겨울이 되기 전에 부지런히 봐두고 고운 빛깔의 하트 사진을 또 찍어둔다.
겨울에는 상록수와 표피가 특별한 몇몇 나무를 제외하고는 나무의 번지수를 알기 어렵다. 단 참나무 계통은 예외다. 떨켜가 없어 단풍도 들지 않고 낙엽이 지지 않아 겨우내 잘랑거리다 부서지는 데다 봄까지 몇몇 이파리들은 누렇게 마른 채로 매달려 있어 겨울에도 신분을 알 수 있다.
겨울이 되면 계수나무 앞에 그리 오래 있지는 않는다. 우선 알아보기가 어렵다. 다만 나는 워낙 자주 봐 왔기 때문에 특정 위치의 나무들은 어디 있는지 안다. 잎이 없는 나무는 표정도 없고 다른 나무 같아 오래 들여다보고 대화하지는 않는다.
나목으로 있을 때도 영 발걸음을 끊는 건 아니어서 종종 잘 견디라고 눈빛을 보내는 정도다. 빈 나뭇가지에 하트가 달리는 상상을 하면 나무 앞에 좀 더 오래 있을 수 있다. “너도 춥고 나도 추우니 이제 갈게.” “잘 있어.” 그렇게 돌아선다.
이듬해 봄을 기다려 여린 하트로 만날 때까지 나는 그리운 사람을 기다리듯 계수나무에서 새잎이 돋기를 고대한다. 공원에 내 편을 심어놓고 애인을 키우듯 마음을 주면 그만큼 산책길이 향기로워지고 발걸음도 가벼워진다.
지금은 여름이고 하트들은 싱싱하고 무성하다. 나의 달에는 계수나무가 있고 토끼가 있다가 언제부터인지 토끼 대신 그리운 사람이 산다. 그리운 사람은 수시로 바뀌기도 하고 막연히 누군가가 되기도 내가 되기도 한다. 공원의 계수나무에 달이 들어와 어느새 배경으로 들어가 있다. 우울하고 힘들 때마다 계수나무가 나를 붙들어주고 토닥여준다.
출처 : <우리동네 아름다운 이야기> 2020년. -한국문인협회인천지회-
-봄에 찍은 송도 센트럴파크의 계수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