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아내의 젖을 보다 / 이승하

서해기린 2021. 2. 16. 17:24

나이 쉰이 되어 볼품없이 된

아내의 두 젖가슴이

아버지 어머니 나란히 모신 무덤 같다

유방암이란다

 

두 아이 모유로 키웠고

내가 아기인 양 빨기도 했던

아내의 젖가슴을 이제

메스로 도려내야 한다

나이 쉰이 다 되어

그대 관계를 도려내고

기억을 도려내고

그 숱한 인연을 도려내듯이...

 

암이 찾아왔으니 암담하다

젖가슴 없이 살아야 할 세월의 길이를

생명자가 있어 잴 수가 있나

거듭되는 항암치료로 입덧할 때처럼

토하고 또 토하는 아내여

그대 몇 십년 동안 내 앞에서

무덤 보이며 살아왔구나

두 자식에게 무덤 물리며 살아왔구나

 

항암치료로 대머리가 되니 

저 머리야말로 둥그런 무덤 같다

벌초할 필요가 없다

조부 무덤 앞 비석이

발기된 내 성기 닮았다

 

 

-계간 서정시학 2008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