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집 & 앤솔러지

21세기시조동인 12집 소개 3 / 임채성, 김남규, 김보람 시인편

서해기린 2021. 8. 25.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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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시조동인 12집 소개 3 / 임채성, 김남규, 김보람 시인편

《보고 싶다는 말》,

21세기시조동인 12집은 2020년 12월 [고요아침]에서 출간되었다.

이송희 시인을 비롯한 10명의 신춘문예 출신 황성진, 이석구, 조성문, 노영임, 임채성, 김남규, 김보람, 박성민, 김영란 시인의 작품들이 실려 있다.

2000년대 조선, 동아, 서울, 중앙 등 서울 소재 신문사의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들로 벌써 열두 번째 동인집이다. 여기서는 사진으로 올린 디카시 포함 세 편씩만 소개하기로 한다. 젊고 현대적인 감각의 시조를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백두 가솔송
ㅡ 야생의 족보 12 /임채성


대륙 향해
창끝 겨눈
고구려의 전사 답다

산 하나
호수 하나
짊어질 결기도 하나

눈보라
삭풍을 딛고
다시 꽃대 세운다


/2020년12월 출간 당시의 신작/

호모 포에티쿠스* / 임채성


그들의 경작지엔 야생마가 득시글했네
구슬리고 을러 봐도 날뛰기만 하는 말들
울타리 말뚝을 박고 가두고야 말았네

그날부터 사람들은 낫과 도끼 내버리고
새끼줄 동아줄로 고삐 재갈 만들었네
된소리 거센소리도 말모이에 잠들었네

그러던 어느 밤에 벙어리가 찾아왔네
말을 훔쳐 달아나다 붙잡힌 그를 위해
마을은 잔치를 열어 말총붓을 선물했네

오늘도 말을 타고 말을 좇는 말술사들
형형색색 말의 집엔 여름 겨울 갈마들고
해 달 별 수만 꽃들이
피고 지고
피고... 지네...

*homo poeticus : 시적인 인간.



/2019년 발표작/

낙지
-야생의 족보 6 / 임채성


마른침이 꿀꺽! 한다
쟁반 위 누드를 보면
실오라기 하나 없이 끈적대는 관능 앞에
달뜬 몸 몰래 식히듯 호졸근히 뱉는 신음

밤새워 널 먹고 싶다
물고 빨고 핥아가며
먹물 밴 머리부터 매끄러운 다리까지
흡반에 입술이 붙는 저항에 부딪치더라도

비리고도 달콤하다
물오른 육체의 맛은
혀와 혀가 감겨들던 첫 키스의 추억처럼
포만이 포말이 되어 스러지는 짧은 절정

알몸으로 살고 싶다
이브처럼 아담처럼
채울수록 허기지는 미식가의 도시에서
선악과 물컹한 살이 잇바디를 애무한다

♤♧
임채성 시인
경남 남해 출생. 200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세렝게티를 꿈꾸며》《왼바라기》 현대시조 100인선집《지 에이 피》
awriter@naver.com


ZOOM /김남규


먼 사람과 한 사람이 약속을 견뎌야할 때
침묵에 물 주거나 붙임성 있는 표정이 있지
충분히
밝고 높은 슬픔으로
안녕에 안녕하렴

중언하고 부언하고 늦게 오는 마음이 있지
흐트러진 등 뒤로부터 괄호를 곧, 닫을 거야
혼자서
내 얼굴을 세어볼게
무릎 당겨 앉았지?


/2020년 12월 출간 당시의 신작/

해설 쓰는 날이 계속 되었다 / 김남규


시와 산문 사이 주저앉아
접힌 문장 펴보다가
못 볼 걸 본 것처럼
할 말을 놓쳤을 때
당신도
마음을 놓쳤을 것이다
우주처럼
까맣게

세상은 물웅덩이다
책에 발이 빠져든다
형용사는 철야중이다
우산에 맺힌 밤을 말린다
우리는
지금 막 탈영한 것처럼
자꾸 얼굴을
볼 것이다


/2019년 발표작/

화요일花曜日 / 김남규


하늘은 필 듯 말 듯
손그늘에 드나들고
흘리듯이 말해도
서로를 흠뻑 적시며
떼쓰는
봄날, 봄의 날
소꼽놀이
허밍처럼

우리는 지는 사람
진다고 흔들리는 사람
저수지 한 바퀴 돌면
계절 하나 바뀌겠지
꽃나비
가만 내려앉듯
마음 툭 치는
일몰 한 점

♤♧
김남규 시인
충남 천안 출생. 200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서울문화재단 문학창작활성화 지원금 수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유망작가 선정. 가람시조문학상 신인상, 김상옥백자예술상 신인상 외 수상. 시집 《밤만 사는 당신》외, 연구서《한국 근대시의 정형률 연구》문장작법서《글쓰기 파내려가기》
knk1231@naver.com



우물-집 / 김보람


누군가의 위로를 짐작하지 못하겠다
둥글게 차오르는
투명,
직전의 투명
같은 밤
다이빙대에 올라
구멍을
인양



/2020년 12월 출간 당시의 신작/

모를 때를 사랑하면 / 김보람


그게 말이나 되나?
자문하는 사람이 있고

어떻게 그래?
되묻는 사람이 있다

들었다 놓았다 하는 기척의
곁에 있다

질문이 자란다
한층 더
올라가세요

새하얀 공책은
연필의 알리바이

세상에 그런 이름은 없다
증명하는
투명ㅡ란드


/2019년 발표작/

밤의 서점 / 김보람


나는 오래된 책처럼 앉아 있습니다

당신은 요즘 무얼 읽고 지내시는지

통로를 활짝 열고서
지워버린 사람이 있었고

안녕 안녕?
우리는 계속 말이 없다

한 페이지의 밤을 다 빠져나간 모래벽

이 책을 기억하시는지
자정이 되면
뒤로 걷는


♤♧
김보람 시인
경북 김천 출생. 2008년 중앙신인문학상 당선. 201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유망작가 선정. 한국시조시인협회 신인상 수상. 시집 《모든 날의 이튿날》《괜히 그린 얼굴》
polaris613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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