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두 번째 농담 》문정영 시집

서해기린 2021. 9. 4. 22:57

 

♤♧시집 소개

《두 번째 농담》 문정영 시집,

시산맥시혼시인선 014
2021년 6월 30일 출간


문정영 시인의 시집 《두 번째 농담》을 다시 펼쳐본다. 출간 당시에 읽고 기존의 시와 확 달라져서 저으기 놀랐는데 어영부영하는 사이 여기저기서 소개를 하는 바람에 나는 그냥 가만히 있었다. 이제 그 바람이 어느 정도 지나갔으니 혼자서 뒷북을 쳐본다.

기후와 환경을 생각하고 AI와 첨단 소재들을 소재로 한 시, 앞서가는 시여서 새롭고 신선했다. 그러면서도 시어는 젊어지고 세련되었다.
시인의 말이 퍽 인상깊었다. 따로 말하지 않아도 읽으면 바로 시집의 성격을 알아챌 수 있다.

시인은 참 바른 사람, 고운 말을 쓰는 사람, 누구나 할 것 없이 인격적으로 대하는 사람,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것은 나만 느끼는 게 아닌 것 같았다.

기후와 환경을 생각해야 하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지만 보다 나은 지구 환경을 위해 우리가 실천해야 할 것들은 간과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시인이 먼저 앞장서 이 문제를 꺼내고 환기시켰으니 감사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조금이라도 실천하려 한다. 샴푸나 세제 덜 쓰기, 물과 전기 아끼기, 자전거 타며 차 덜 타기, 안 쓰는 플러그 뽑아두기, 1회용기 덜 쓰고 음식물 쓰레기 덜 만들기, EM 발효액 이용하기 등 찾아보면 아주 없는 게 아니다. 나 하나쯤 하는 생각을 버리고 나도, 하며 공동체 인식을 가지려 한다.


♧ 시인의 말


4차 5차 혁명에 우리는 AI와 어떻게 공존해야 할까?

그때에 사랑, 이별, 고통은 어떻게 변할까?

다음 여행은 지구의 기후와 환경에 대한 것들이다.

인간의 생존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시집의 고정관념에서 조금은 벗어나고자 했다.

해설 대신 시산맥 회원들의 추천글을 다수 게재하였다.


2021년 여름, 문정영



넷플릭스

문정영


꽃을 꽃으로만 보던 절기가 지났다

계절이 꽃보다 더 선명하게 붉었다

그때 당신은 열리는 시기를 놓치고,

나는 떨어지는 얼굴을 놓쳤다

되돌려볼 수 있는 사랑은 흔한 인형 같아서

멀어진 뒤에는 새로운 채널에 가입해야 했다

언제든 볼 수 있는 당신은 귀하지 않았다

공유했던 두근거림이 채널 뒤의 풍경으로 사라져 갔다

나는 캄캄한 시간을 스크린에 띄우고

당신에 대한 기억을 하나씩 지우기로 했다

사랑을 자막처럼 읽는 시절이 왔다

눈에 잡히지 않은 오래전 사람처럼 자꾸 시간을 겉돌았다

나를 의자에 앉혀두고

당신은 생각에서 벗어난 생각을 보고 있었다

느슨해진 목소리가 사랑을 끝내고 있었다

툭 툭 우리는 같은 의자에서 서로 다른 장면을

몸밖으로 밀어내는 중이었다



블루라이트

문정영


투명하고 경쾌한 푸른 빛이 연신 깜박이고

네가 뱉는 말들은 우주를 건너와

나의 망막에 맺히는 달콤한 상像이었지

그 말들의 맥락을 읽다가 불면이 깊어갔던 것

너는 참 선명하고 편안했어, 그게 어떤 홍채였는지

나의 망막에 굴절돼 따뜻한 문장 품고 있었다

하지만, 눈 한번 감았다 뜨는 사이

나의 시야를 벗어난 너

안경 너머 침묵을 자주 응시하곤 했지

어느 뜻밖의 말들이 지상에 닿았다가 반사된 것일까

바꿔 쓴 안경알의 바깥이 흐렸고

캄캄한 곳에서 몰래 들여다 본 블루 문자들이 가물거렸어

마치, 기압이 높은 날

유난히 별들이 서쪽 천변으로 기우는 것처럼

밤은 푸르게 충혈되고 있었지

그 후 점점 붉어지는 것의 정체를 나는 이별이라 읽었다



레이어드 홈

문정영


이 길에서는 어떤 쪽으로 틀어도 이별이다

붉은 발자국이 생기는 방향으로

네모난 지붕의 그림자가 가로수처럼 박혀 있다

저녁의 아코디언 맨은 박자가 맞지 않은 놀이를

그 집 앞에 심어두고 갔다

이별이 필요 없는 붙박이 가구를 설계해야겠다

헤어진 후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던 마스크보다

슬픔을 기록할 수 있는 책상을 들여야겠다

이미 타버린 날들은 소파에 앉혀 두지 못한다

울음 바이러스를 박제해 둔 채 누군가 떠나간 후

혼자인 나를 지주支柱마냥 여기저기 박아두었다

내가 세운 돔에서 하루하루 슬픔을 떼어먹고 있었다


* Layered Home : 마치 여러 벌의 옷을 겹쳐 입어서 멋을 부리는 레어어드 룩처럼 집에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여 집의 공간 기능이 다양화되는 것


♧♤
문정영 시인

전남 장흥 출생
건국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1997년 《월간문학》 등단
시집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1998년) 《낯선 금요일 》(2004년) 《잉크》(2009년)《그만큼》(2014년)《꽃들의 이별법》(2018년)《두 번째 농담》(2021년)
계간《시산맥》발행인
동주문학상 대표, 지리산문학상 공동 대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창작기금 3회 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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