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미 수필 & 산문
신풍 고모
서해기린
2021. 9. 27. 10:40
정상미
갑작스런 부고였다. 고모는 코로나 백신 2차 접종 후 이상증세로 6월에 입원해 병원을 전전하다 추석 다음 날 하늘 나라로 가셨다. 향년 82세다.ㅠㅠ
먼저 가신 아버지와는 남매로 하나뿐인 인정 많은 고모였다. 병원에 종종 가실 일은 있어도 큰 지병은 없었다는데 폐에 물이 차고 신장이 망가져 투석까지 하다가 항생제에 대한 내성균에 감염되었단다.
안부를 묻지 않아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죄스러움과 미안함이 앞서 혼자서 자책하다 좀 알려주지 그랬냐고 사촌에게 살짝 원망조로 말했더니 우리엄마가 뇌경색으로 쓰러져 수년을 누워계시고 코로나여서 그랬다고 한다. 뉴스로만 듣던 일이 내 주변에서도 일어나다니!
더 기막힌 일은 고모부도 한 달 전에 두 번째 뇌경색으로 쓰러져 줄곧 입원중이고 상당 기간 충북대 병원에서 같이 입원해 계셨다는 거다. 뇌경색이 양쪽 뇌에 다 와서 두 팔을 사용하지 못하고 사람만 알아보는데 이번에 고모의 사망 소식을 일부러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아내가 죽은 줄도 모르고 병원에 계신다.
남편은 휠체어에 태워서라도 아내 가는 길을 보여 드려야 하지 않느냐고 내게 말했지만 상태를 봐서 자식들이 알아서 하지 않았겠냐고 나는 말했다.
장례식장에서 고모의 영정사진을 보니 살아계신 것 같고 내게 말을 걸어올 것만 같았다. 농사일 많은 집으로 시집가서 한평생 일에 치여 살았던 고모, 중간에 아들네가 들어와 살며 아들 네 식구까지 다 건사하느라 하루도 쉴 날 없었다고 사촌 언니는 울었다. 며느리가 직장에 다녀서 오히려 떠받들고 살며 며느리에게는 물 한 잔도 얻어먹지 못했다고 한다. 과수원과 한우 축사 관리, 벼농사까지 하는 집이었다.
돈도 많고 전망 좋은 멋진 집에서 살았지만 일하느라 어디 여행이나 가 봤을까. 참으로 인생 덧없고 덧없다. 늘 부지런하고 음식 솜씨도 좋아 명절에 친정 갔다가 올라가는 길에 들르면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주고 반갑게 맞아주시던 정 많은 고모였다.
문경에서 이화령을 넘어 괴산으로 시집간 고모네 집으로 초등 시절 방학땐 언니나 오빠와 함께 며칠씩 머물다 오기도 했다. 사촌들도 우리집에 놀러 왔었는데 문경과 괴산은 인접해 있었지만 경북과 충북인 만큼 말은 확연히 달랐다.
고모는 착하게 살았고 권사님이었으니 필시 천국에 가셨을 것이다. 오빠인 아버지가 그동안 사느라 애썼다며 잘 맞아줄 거라고 남편은 말한다. 고모와 한동네 살았다는 고모의 시조카는 우리 아버지가 생전에 누이집에 찾아가서 고모부에게 여동생 고생시킨다고 호통을 쳤는데 얼마나 큰소리로 무섭게 치는지 동네가 들썩거렸다고, 그때 본인은 오빠가 없어서 우리 고모가 부러웠다고 한다. 호인 소리 듣던 아버지가 그랬다는 말을 들으니 누이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지극했는지 잘 알겠다.
고모는 우리 할머니를 닮았고 사촌 언니는 고모를 닮아서 나는 언니를 보며 자꾸 할머니가 생각났다. 언니는 또 나를 보니 우리엄마가 보인다고 했다. 유전자는 참으로 위대하다.
발인에 참여한 남동생이 보내온 동영상에서 전통상여의 모습을 보며 나는 울었다. 망자의 혼을 달래는 상여꾼들의 목소리가 지금까지 귓전에서 떠나질 않는다.
어어하 어어허 어어하 어어허......
이제는 일 없는 곳에서 엄마와 오빠도 만나고 편히 좀 쉬셨으면 좋겠다.
지난가을 산북의 김용사 명부전 앞마당에서 할머니와 아버지, 오빠가 떠올랐는데 이제 고모까지 보탠다.
인생이 덧없다 여겨지거나 쓸쓸할 때 착착 감기던 조영남의 '모란 동백'을 들으며 고모의 명복을 빈다.
2021. 9.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