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노트가 있는 시
달빛공원
서해기린
2021. 10. 7. 23:27
달빛공원
정상미
어린 봄, 내가 송도의 달빛공원으로 가는 것은
거기 샛강처럼 소곤대는 가느다란 바다가 있기 때문
긴 시야는 턱밑의 내일을 몰라 마스크를 하고
내가 굳이 달빛공원으로 나가는 것은
거기 솟대에 걸린 낮달에서
나를 오래 바라볼 수 있기 때문
죄가 밟히는 목소리 간절할 때
해풍에 둥글어진 해당화 진 자리에서
내가 나지막하고 단단한 침묵 소리로
붉어질 수 있기 때문
검은 생각이 씻겨나가 돋아난
갈대들이 쓰는 마른 말들을 주워
내가 시 한 편 길러 볼까
뒤꿈치를 들어 올리기 때문
살아가는 꿈을 적는 것은
수면에서 뭉게뭉게 번져가는 하얀 이별을
쿡, 쿡, 박음질하고 있기 때문
*시작노트
내가 나를 알 수 없을 때, 내가 궁금해질 때 종종 나를 마중하러 간다. 거기 가면 내가 걸려 있고 떠 있고 거긴 맑아서 내가 비친다. 나를 헹궈주고 채워주고 익게 해주는 그곳에서 나는 가끔 나를 들을 수도 있다. 주기적으로 나를 끌어당기는 달빛이 공원의 주인이고 그가 거느린 자식들 또한 유순하다는 것, 무엇보다 다행인 것은 그곳이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