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유채꽃 광장의 증언.김현주 제3시집

서해기린 2022. 3. 10. 13:44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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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 시인의 제3시집

『유채꽃 광장의 증언』이

출판사《문학아카데미》에서 2021년 8월 30일 출간되었다. 축하드리며 여기서는 세 편만 소개한다.

표지를 덮었다가 아무데나 열어 펼쳐도 어느 시 하나 여물지 않은 것이 없다. 2시집 『好好해줄게 』도 참 좋게 잘 읽었는데 이번엔 더 시적 내공이 단단해지고 사유가 깊어진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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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의 저쪽 / 김현주


선과 악이 서로 낯을 가리듯
서로의 얼굴을 가린 대문 앞, 택배아저씨가
기척도 없이 물건을 던지고 유령처럼 사라진다


너무나 조용하여 다 읽지 못한 적막의 숨소리
휴지기에 들어간 성소는 지금 침묵을 번식 중이다


혓속에 갇힌 태초의 구음口音들
사랑이란 말들이 농밀하게 담겼을 입술을 가리고
사제들도 지저귀는 것이나 떠드는 것이 하나도 없다


책 넘기는 소리와 책상 무릎이 서로 부딪쳐
어둠의 난간을 붙들고 시간의 넓적다리가 녹는 중이다


경로를 벗어난 새들이 배회하는 봉쇄원
외로움의 극지에도 틈이 생긴 듯
사랑한다, 사랑한다, 한없이 길어지는 혀
영상 속 남자와 여자가 뜨겁게 포옹하고 있다


비대면 저쪽도 지금 고독을 탈피중인 듯
주머니 속에서 전화벨이 울린다,
당신이겠지, 당신일 거야,
먼 데서 옮겨 심은 천리향이 홀로 흐느끼는


이곳은 밤낮 없는 고독의 서식지,
기척도 없이 누가 문밖을 왔다 떠나는지
발버둥치는 번개와 천둥소리가 요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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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제단 / 김현주


느티나무침묵 속에 찌가 흔들립니다
가문 강바닥을 서성이던 한 울음이 걸렸나 봅니다

부르르 떠는 수면을 물고 제 몸을 한 자씩이나 튕겨
사랑을 고백하던
금기와 배반의 강가,


당신은 아픔을 모르는 물 밖의 아가미입니다
십사 년을 하루같이 세차게 물보라를 덜어내던
그런 물소리가 아직 내게도 있습니다


파문을 그리며 가만히 거슬러 오는
슬픈 어족의 일이란 강물에 눈물을 새기는 일
가문바닥을 헤매다가 영혼의 눈이 십리쯤 들어간


숭어 한 마리,
불꺼진 느티나무제단 위에 놓고 갑니다
몸부림치다가 제풀에 쓰러져 돌 같이
굳어진, 심장에 각을 떠서 어느 뜨거운 가슴 속으로
다시 헤엄쳐 갈 수 있도록


절뚝이면서 돌아서는 사람그림자
울음을 게워내던 강물이 조용히 이별처럼 흘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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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개전투 / 김현주


인큐베이터 안에서 숨쉬는 애호박, 작은 상자 안에서 자라는 송아지, 도살장으로 가는 황소의 쓸쓸한 눈, 칸막이 안에서 혼술하는 고시생, 빗방울 하나 없는 산꼭대기에서 방주를 짓는 노아, 불탄 노트르담 성당에서 안전모를 쓴 채 연주하는 오르가니스트, 텅 빈 성전에서 허공을 치며 설교하는 성직자, 비닐 옷을 입고 돼지트럭을 운전하는 아저씨,


호시탐탐 노리는 적병을 곁눈질하며 각자 벌이는 생의 전투가 치열하다

불안을 장전한 단 하나의 무기는 흠 없는 마스크,


문상객도 없이 홀로 거두는 최후의 숨을, 자루에 쓸어 담는 검은 그림자


언젠가 불태워질 낙엽, 저 외로운 전투를 누군가 도와줘야 하는데.



시집 『유채꽃 광장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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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 시인

전주 출생
칼빈신학대, 고려신학대 졸
2007년 『시선』등단
시집 『페르시안 석류』 『好好해줄게』 『유채꽃 광장의 증언』

숲속의 시인상, 매일 시니어문학상, 시인들이뽑은시인상 등 수상.

인천문화재단기금 수혜(2회)

E메일 : wine47@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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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매미가 악을 쓰고 운다
청춘아, 너는 아직 잉여의 눈물이 그리 많으냐?
새파랗게 자지러지는 그런 울음이 싫어
녹슨 귀를 틀어막아 보는데
바지춤 내리고 노인이 쉬, 하는 소리가
등줄기에 자그럽다.
다시 시작된 땡볕 아래
미처 수습하지 못한 서러움처럼
원추화서로 익어가는
나의 붉은 수수밭


https://youtu.be/aYQ0TVeOV-I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이문세
피아노 커버

https://youtu.be/kZOrGN0Xm-s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 이문세 노래
가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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