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미 수필 & 산문
송도의 자전거 길
서해기린
2022. 3. 13. 10:55
송도의 자전거 길
정상미
자전거를 타기엔 송도가 그런대로 편하고 좋다. 해 질 녘 은빛 바퀴를 굴리며 아트센터 뒤쪽으로 가면 갇힌 바다 저 너머 아파트 숲 사이로 해가 진다. 가끔 오리 몇 마리 갈매기 몇 노닐다가 철썩거리며 노을이 내려앉는다. 스피커에선 음악이 흐르고 하루는 늘 그렇듯 아무렇지도 않게 저물어간다.
설령 슬프거나 복잡한 일이 있어도 서쪽에서는 잊기로 한다. 서쪽은 편해야 하고 서쪽은 이완되는 곳이다. 해가 질 때는 다 녹아버린다. 가을에는 하늘거리는 억새를 배경으로 해가 져서 운치가 더 좋다. 나는 어릴 때부터 자전거를 잘 탔고 여기는 자전거도로가 잘 되어 있어서 장을 볼 때도 자전거를 이용한다. 일부러 나오기도 하지만 가끔은 우체국이나 도서관에 들렀다가 그냥 가지 않고 늘 내가 가는 코스대로 바퀴를 굴려간다.
아기자기한 아트센터 앞마당을 몇 바퀴 돌고 나를 붙드는 맥문동 무리와 인사한다. 뒤쪽 바다를 바라보다가 다시 도로로 와서 줄곧 앞으로 간다. 이 땅의 유전자들은 짭조름해서 공터 곳곳에 갈대가 저들끼리 몸을 비빈다. 봄에는 벚꽃이 피고 다음은 해당화와 개망초, 가을에는 코스모스가 지는 해를 배경으로 이어진다. 솔찬공원까지 가는 길은 왼쪽에 갈대가 무성하고 잭 니클라우스 골프장 둘레는 장미가 예쁘다. 계속 위는 장미, 아래는 개망초 물결이 이어져 그림 같다. 내가 나를 내려놓기에 딱 좋다.
가다가 필드에서 라운딩하는 사람들을 바라보기도 한다. 필드 내부도 아름다울 것이다. 거기서 하루를 접고 있는 사람들과 나처럼 바깥에서 바퀴로 내달리며 저녁의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팔을 흔들며 열심히 걷는 사람들의 마음이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바닷가엔 바람이 많고 바람은 나를 깨운다. 바람에 맞서기도 하고 바람이 밀어주기도 하며 나는 앞으로 간다. 오로지 자연과 나만 생각한다.
꽃이며 풀, 나뭇잎은 그냥 보기만 해도 좋아서 힐링이 된다. 이제 솔찬공원이 가까워지면 바다에는 커다란 배들이 크레인을 달고 쉴 새 없이 뭔가를 하는 게 보인다. 너머로 거대한 LNG 시설이 보이고 나의 기린들이 목을 빼고 서 있거나 더러는 접고 있다. 노을은 환상적이다. 어떤 형태로 지든 흐려서 숨는 것만 아니라면 모두 아름답다. 황혼에 기대는 사람들은 오늘도 저마다의 자리에서 곱게 익어갈 것이다.
잠시 멈춰서 먼 기린들을 찍고 솔찬공원에 닿는다. 한겨울을 빼고는 갈매기들을 만날 수 있는데 새우깡을 주면 시끄럽게 다가오는 갈매기들을 가까이 볼 수 있어서 좋다. 생각보다 크고 통통한 애들은 똥을 찍 갈기기도 하지만 군무를 보여주기도 하며 즐거움을 준다. 해변이 없는 바다, 바닷물은 만질 수 없고 발목을 적실 수도 없어서 늘 아쉽지만, 기린과 사람들은 위안이 된다. 기린은 크레인으로, 일할 때는 허리가 접혀 있다. 기린들은 곧 바다로 걸어 들어갈 듯 서 있다.
처음 이사 왔을 때 거실에서 보던 구 인천항의 기린들은 신축아파트들이 다 삭제해 버렸다. 언제나 동화 같은 모습을 보여주던 그들이 사라지자 나는 쓸쓸하고 허전하고 그들이 그리웠다. 그래서 신항만의 기린이라도 보려고 솔찬공원에 간다. 기린은 평화롭고 나를 편안하게 해준다. 사람들은 그네를 타거나 벤치에 앉거나 산책을 한다. 새우깡을 던지며 갈매기와 노는 그들은 역시 평화롭고 아름답다. 여기서 노을은 절정이거나 수평선으로 가라앉으며 이어서 어둑해진다. 뾰족했던 모든 것들은 무디어지고 사라진다.
돌아올 때는 왔던 길로 오지 않고 인천대 정문 쪽으로 온다. 젊은 대학생들을 만나는 건 언제나 즐겁다. 나의 푸릇했던 그때가 생각나기도 하며 뭔가 젊은 에너지가 나에게 건너오는 것 같다. 센트럴파크 앞으로, 옆으로, 바퀴를 신나게 굴리며 땀에 옷이 젖으며, 운동도 하고 힐링도 제대로 했으니 나의 저녁은 아늑해진다. 바큇살이 하루의 뒤쪽을 씽씽 잘 굴려주었다. 다음엔 가느다란 바다가 있는 달빛공원으로 가야지.
《아름다운 우리동네 이야기》2021. 인천문인협회
https://youtu.be/Hq4LwSkzHX0
기린의 해고 /정상미 시, 임주연 낭송
#송도의자전거길 #정상미시인 #기린의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