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린공원의 아치형 그늘에서 만난 으름덩굴과 그 꽃
수평을 찾아서...12/4/23
꽃피고 꽃 지는 물빛 좋은 봄날, 그들은 소풍을 갔는데 잘 놀다가 괜히 어떤 이야기를 시작했다네.
처음에는 함께 가꾸던 나무의 달콤한 열매를 바라고 한 것인데 그는 그의 말만 하고 그녀는 그녀의
말만 하며, 서로의 귀는 닫았다네. 가지를 쳐라, 자연스러운 것이 좋다, 밤이 새도록 자기 말만 하다가
소리를 높이더니 얼굴까지 붉으락 푸르락 한숨 쉬며 흔들렸다네. 그들이 찬비 맞으며 떨고 있다고
지나가는 바람이 전해 주네. 산그림자 내려앉은 호수를 보다가 내 생각만 하고 내 말만 하던 그 앞에 선
나를 보았네. 수평을 잃은 연통 때문에 숨 못 쉬고 울던 보일러가 생각나네.
어떤 오우버 ....12/4/24
세탁소에 옷을 찾으러 갔다. 터진 주머니를 박아 달라고 했는데 드라이까지 해 놓은 것을 보고
여느 때 같으면 인상도 쓰고 안 좋은 소리를 했겠는데 왠일인지 나도 모르게 웃으며 뭐 그럴 수도
있지요, 괜찮아요, 했다. 그 옷은 구겨지지도 않고 물에 빨아도 되는 것이라 드라이는 필요 없는 옷,
헛돈을 쓴 것이지만 말끔하니 새 단장을 한 것이 보기에는 좋았다. 날씨도 더우니 이참에 그냥 집어
넣고 가을에나 입을까. 내 성질이 죽었는지 이 나이에도 철이 들어가는지 전에 없던 행동을 한다.
뾰족해 봐야 부딪치기나 하고 아프기나 하지 좋은 것도 없다는 걸 학습해 봐서 나도 모르게 둥글게
넘어 가는 것일까. 지천명을 지나니 나도 마모되는구나! 벚꽃잎이 하얗게 떨어지며 봄날은 가고
나도 한 고개를 넘어가고 있다.
여린 것 ...12/4/25
어린 머위를 쪄서 강된장에 찍어 먹는다
어제는 사위도 안 준다는 첫 부추를 무쳐 먹었다
가끔 다래순도 나물로 먹는다
더러는 새순으로 만든 우전을 우려 마신다
저 여린 것들만 사람들은 탐했다
꽁꽁 얼었던 어둠의 세월, 긴 눈보라를 견딘 너희들이
땅을 뚫고, 단단한 껍질을 깨고 세상에 입맞춤하다가
싹뚝, 뎅강 잘려나갔다
너희들끼리 하하 호호 잘 놀다가 사람들만 오면 뚝 그친다지
미안하고 부끄러워라
나는 오늘도 너희를 밟고 마시고 먹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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