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미 수필 & 산문 30

송도의 자전거 길

♤♧수필 송도의 자전거 길 정상미 자전거를 타기엔 송도가 그런대로 편하고 좋다. 해 질 녘 은빛 바퀴를 굴리며 아트센터 뒤쪽으로 가면 갇힌 바다 저 너머 아파트 숲 사이로 해가 진다. 가끔 오리 몇 마리 갈매기 몇 노닐다가 철썩거리며 노을이 내려앉는다. 스피커에선 음악이 흐르고 하루는 늘 그렇듯 아무렇지도 않게 저물어간다. 설령 슬프거나 복잡한 일이 있어도 서쪽에서는 잊기로 한다. 서쪽은 편해야 하고 서쪽은 이완되는 곳이다. 해가 질 때는 다 녹아버린다. 가을에는 하늘거리는 억새를 배경으로 해가 져서 운치가 더 좋다. 나는 어릴 때부터 자전거를 잘 탔고 여기는 자전거도로가 잘 되어 있어서 장을 볼 때도 자전거를 이용한다. 일부러 나오기도 하지만 가끔은 우체국이나 도서관에 들렀다가 그냥 가지 않고 늘 내가..

신풍 고모

신풍 고모 정상미 갑작스런 부고였다. 고모는 코로나 백신 2차 접종 후 이상증세로 6월에 입원해 병원을 전전하다 추석 다음 날 하늘 나라로 가셨다. 향년 82세다.ㅠㅠ 먼저 가신 아버지와는 남매로 하나뿐인 인정 많은 고모였다. 병원에 종종 가실 일은 있어도 큰 지병은 없었다는데 폐에 물이 차고 신장이 망가져 투석까지 하다가 항생제에 대한 내성균에 감염되었단다. 안부를 묻지 않아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죄스러움과 미안함이 앞서 혼자서 자책하다 좀 알려주지 그랬냐고 사촌에게 살짝 원망조로 말했더니 우리엄마가 뇌경색으로 쓰러져 수년을 누워계시고 코로나여서 그랬다고 한다. 뉴스로만 듣던 일이 내 주변에서도 일어나다니! 더 기막힌 일은 고모부도 한 달 전에 두 번째 뇌경색으로 쓰러져 줄곧 입원중이고 상당 기간 충북..

센트럴파크의 계수나무

센트럴파크의 계수나무 정상미 도심 속 작은 숲 센트럴파크에는 나무가 많다. 내가 좋아하는 나무는 자작나무와 칠엽수, 대왕참나무, 메타세콰이어, 이팝나무, 키 큰 금강송, 모과나무, 매화나무, 조팝나무…, 어느 나무나 꽃이든 그 나름대로 매력이 있어 다 좋아한다. 산책하며 나무나 꽃, 풀까지 눈여겨보는 편인데 어느 날 이파리 모양이 독특한 나무를 만났다. 나는 시골에서 자랐고 평소 식물에 관심이 많아 나무나 풀의 이름을 제법 많이 알고 있는 편에 속한다. 종종 처음 보는 나무나 꽃을 만나면 궁금해서 이름을 알고 싶어 안달이 난다. 잎이 예쁜 하트 모양인 이 나무는 자작나무나 소나무만큼 많지는 않았지만 제법 몇 그루가 보였다. 이름이 뭘까 궁금해하던 차에 어느 날 드디어 명찰을 단 나무를 보았고 그 나무가 ..

추억의 이화령 / 정상미

출처 : 다음 이미지 추억의 이화령 정상미 사람이 자주 지나가면 풀밭도 산도 길이 된다. 어떤 길은 평탄하고 어떤 길은 험한 고개로 이어져 구불구불하다. 길과 함께 이야기가 생겨나고 그 이야기는 편한 길보다 험한 길에서 더 많이 태어난다. 잊을 수 없는 길이 있으니 문경과 괴산을 이어주는 고갯길, 참으로 강심장을 지닌 사람들만 다닐 수 있다는 이화령이다. 도로 사정이 좋아지기 전에는 문경에서 충북이나 경기, 서울로 가려면 굽이굽이 낭떠러지가 이어지는 공포의 이화령을 넘어야 했는데 눈이 오면 초비상이었다. 아버지께서 공무원이라 더 그랬는지 몰라도 그럴 때면 문경의 관공서는 총동원령이 내려져 모두가 이화령으로 달려가 눈을 치우거나 염화칼슘을 뿌리고 모래를 쏟아부었다. 그런 날은 으레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