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아카시꽃/서동안

서해기린 2013. 5. 23. 13:51

 

 

 

 

아카시꽃

 

 

더러 밤길을 터덕거리고픈 날

안개로 떠다니는 섬 같은 향기

턱밑까지 그윽이 밀려와 넘실넘실 차오르면

흰 그리움으로 흔들리며 피는 꽃

 

 

그리움도 비워야 채워진다

그리움도 비워야 채워진다

수없이 다짐하다가 떨어지는 꽃

 

 

마음을 밀어낸 다음에야

거울 속 자화상처럼 투명해지는 것을

한때 꼬투리 속에서 꼬들꼬들 말라 가며

까만 씨로 길들여지기까지 지독한 슬픔도 있었으니

 

 

꿈결 같은 이승으로 살그머니 돌아와

오직 봄밤을 위해

향기 반 빛깔 반 내려놓고

돌아갈 채비 서두르는 흰 꽃송이

어둠 속에 그리움 내려놓는 거기 어디쯤

내 그리움도 묻혀 놓고 싶다

 

 

  - 서동안 -   시집, 꽃의 인사법』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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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도 비워야 채워진다

그리움도 비워야 채워진다

수없이 다짐하다가 떨어지는 꽃

..........

 

어둠 속에 그리움 내려놓는 거기 어디쯤

내 그리움도 묻혀 놓고 싶다

 

 

                 창을 열면 훅~ 하고 밀려들던 아카시향이 어느새 옅어졌네요.

                 저를 봄의 한가운데 내려놓고 혼미하게 하던 꽃이 지고있어요.

                 오래 기다리고 공들여 피웠지만 지는 것은 한순간인 것 같아요.

                 그리워지고 그리워하려는데... 넉넉한 시간은 주지 않는군요.

                 그리움도 비워야 채워진다지만 그것은 '그리워하라'는 말로 들리네요.

                 아직 남은 아카시향을 아껴가며 맡겠습니다.

                 그리워할 수 있게 해 줘 고맙고

                 그리워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우리는 그립다 그립다, 말합니다.

무엇이 그리운걸까요. 좋았던 사람이, 풍경이, 그 시절이 그리운 걸까요?

어쩌면 지나간 것은  다 그리운 지도 모르겠습니다.

설사 그것이 힘들고 기억하기 싫은 사람이거나 시절이라 해도 말이지요.

추억을 먹고 사는 것이 사람이니까요.

 

 

 

 

 

 

들길을 따라 걷자니 아카시꿀을 받으려는 양봉업자들이 논에 밭에 벌통을 잔뜩 들여 놓았습니다.

뒷산을 오르는데 고갯마루에 서자마자 텐트가 보이고 두 남자가 숙식을 하는지 취사도구며 이불이 보입니다.

호기심 반 무서움 반으로 흘낏 보니 옆에 벌통이 탑을 이루듯 쌓여 있습니다.

한 아낙네는 효소를 만든다 하고 또 한 아낙은 말려서 茶로 쓴다며 아카시꽃을 큰 비닐에 가득 따서  내려옵니다.

저는 아카시향이 가득한, 그리움 그윽한  이 시절이 그냥 좋습니다.

 

 

아카시꽃이 핀 지가 언제인데 차일피일 하다 이제야 올리게 되네요.

위 <아카시꽃> 시는 블로그 친구 산마을님이 직접 쓰신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