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우리는 남남이 되자고 포옹을 했다』#김네잎
♤♧
몸과 몸은 간극이 필요하다
잠시 부둥켜안는 건
서로의 가장 깊은 호흡을 가늠해보는 겨를
공격과 방어의 격돌에는 공시성을 갖는다
링의 로프를 등지고
이곳은 난간과 난간이 만나는 지점
은신처가 될 수 없는 벼랑
쏟아지는 잽, 잽, 잽
달아나는 스탭, 스탭, 스탭
주먹을 펴도 주먹인데 코치는
날린 주먹을 되돌아오게 하려면 손의 힘을 빼라고 한다
울지 못해서 멈추지 않았다
멈추지 못해서 주먹을 쥐고 달아났다
달아나는 반경까지 왜 하필 점점 좁아졌던 걸까
사각死角 밖으로 벗어나 본 적 없다는 말을 너무 빨리 이해한다
3분만 반복해서 버티면 된다
부러지지 않게 파열되지 않게
정면이 계속 나를 고집하니
훅, 치고 빠지면서 살짝 틈을 보여준다
틈을 안고 자라난 것들은
대개 굳은살이 박여서
허기의 무게를 견디는 법을 잘 안다
어퍼컷,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려던* 계획이 전부 빗나간다
턱을 못 넘고 언제나 턱 앞에서 고꾸라졌으니
잠깐의 클린치는
서로의 가장 거친 호흡을 가늠하는 순간이다
피범벅이 된 마우스피스가 굴러간다
나를 위해 던져질 수건조차 없으니
쓰러진 채 씩, 웃는다
-「복서」 전문. 김네잎
*1964년 2월 25일, ‘무하마드 알리’가 세계 챔피언 경기 시작 전 기자회견에서 상대 선수인 ‘리스턴’에게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겠다’고 말했다.
♤♧
나는 우아하게 착지하려고 했어
맨손으로 공중을 짚을 때
오늘은 얼마나 높이 도약해야 다다를 수 있는 고도인지
얼마큼 무릎을 접어야 더 오래 떨어질 수 있는 밑바닥인지
곳곳에 당신의 편린들이 있어서 의심하지 않았어
당신이 은밀한 손으로 등을 받쳐줄 때
은밀하지 않은 목소리로 충고할 때
등에 통각이 돋아나는 느낌
공중회전에서 당신은 한 바퀴를 원했고
나는 두 바퀴를 고집했지
당신은 자꾸 날아가는 새를 만지려고 했어
언제나 내 몸을 반경 속으로 집어넣으려고만 했지
그럴 때마다 새의 젖은 울음소리가 빠져나오곤 했는데
흩어지지 않으려면 도대체 몇 호흡을 멈춰야 할까
완벽하게 착지하려면 얼마나 더 여백을 견뎌야 할까
발에도 슬픈 목이 존재하는 줄 모르고
-「텀블링tumbling」 전문. 김네잎
♤♧
이름이 참 예쁜 시인 김네잎 시인의 첫 시집 『우리는 남남이 되자고 포옹을 했다』(천년의 시작. 2020.6)를 읽었다. 시인의 이름은 한 번 들으면 오래 기억될 것 같고 시집 제목은 얼른 표지를 넘기고 싶게 만든다. 시인의 이름도 시집도 이미 알고 있던 터라 더 집중했다.
시 한 편 한 편이 다 팽팽하고 길이가 있었으며 오래 만진 흔적이 엿보였다. 유성호 문학평론가는 <존재론적 감각과 자기 재진의 시 쓰기>란 제목의 해설에서 [실존의 원리를 탐색하는 미학적 궤적], [존재 생성과 이미지 창안의 상상력], [세계의 외곽을 바라보는 타자 지향의 감각], 그리고 [‘시 쓰기’의 깊은 자의식을 통한 자기갱신의 의지]라는 소제목으로 시집을 정의했다. 하린 시인은 표사表辭에서 김네잎 시인을 ‘낯설게 하기’에 뛰어나다 했고 전체를 통틀어 ‘함부로 쓰여진 시’는 하나도 없다고 했다.
나는 「복서」, 「텀블링tumbling」, 「그레코로만형」과 같은 스포츠 종목의 시가 특별히 눈에 들어왔다. 경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며 쓴 시에서 시인이 선수들을 바라보는 마음과 상상력을 가미해 삶을 연결하는 지점이 특별하게 다가왔다. 김네잎 시인만의 시였다.
#김네잎시인 #우리는남남이되자고포옹을했다 #복서 #텀블링
'시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채꽃 광장의 증언.김현주 제3시집 (0) | 2022.03.10 |
---|---|
펜로즈 계단 ㅡ최우서 첫 시집 (0) | 2021.10.18 |
《두 번째 농담 》문정영 시집 (0) | 2021.09.04 |
조경선 시인의《개가 물어뜯은 시집》 (0) | 2021.04.26 |
나의 무한한 혁명-김선우 시집 (0) | 2012.03.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