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해설 및 평론

몸에 짓는 집/ 데칼코마니 부부-[열린시학] 2022 여름호 평론에서

서해기린 2023. 3. 16. 14:55

[열린시학] 여름호에 봄에 발표했던 시조 두 편이 또 실렸다. '지난 계절에 읽은 좋은 시조' 꼭지에 이송희 선생님께서 평론으로 다뤄 주셨기 때문이다. 작품을 발표하며 괜찮은 건지 가볍지는 않은지 내심 불안했는데 정말 감사하다. 
 
  "교집합 저 너머로" 라는 제목부터 끌린다.  
 
*** 
 
 교집합 저 너머로 
 
 이 송 희 
 
 1~4 중략 
 
 5. 
 
 마음에 비 내릴 땐 다리를 꼬아요 
 
 빗물을 막으려면 허벅지부터 조여야 하죠
 슬픔이 피어나지 않게 무릎에 무릎을 얹고 
 
 내 몸에 지은 집으로 내가 들어가요
저려오는 비굴쯤은 꾹 눌러 참아내고 
 
 당신이 두려워지면 재빨리 문을 닫아요 
 
 다리로 지은 집은 생각보다 튼튼해서
 아무도 들 수 없고 나만 홀로 차올라요 
 
 고독을 배양시키면 아늑을 입을 수 있죠
         - 정상미, 「몸에 짓는 집」 전문, 󰡔열린시학󰡕, 2022, 봄호 
 
 빗물은 눅눅하고 그늘지고 축축한 속성이 있다. 시적 주체는 “마음에 비 내릴 땐 다리를” 꼰다. “빗물을 막으려면 허벅지부터 조여야 하”는데, “슬픔이 피어나지 않게 무릎에 무릎을 얹”어야 한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분간이 안 가는 슬픔은 그 흘러내리는 속성이 닮았다. 이 시에서 “아늑을 입”는 것은 다리를 꼬는 행위와 같다. 포근하게 감싸 안기듯 편안하고 조용한 느낌이 드는 자세이기 때문이다. 아늑을 입는다는 것은 그만큼 고독했다는 반증이다. 시적 주체의 다리를 꼬는 자세는 당당하게 몸을 펼 수가 없는 자세로 비굴한 자세다. “저려오는 비굴쯤은 꾹 눌러 참아내고” 주체는 몸속에 지은 집으로 들어간다. 몸에 짓는 집은 몸을 지켜주는 벽과 보호막, 문지기 등의 의미를 갖는다. 빗물이든 슬픔이든 외부에서 오는 것이라서 그것을 막아내려고 주체는 안간힘을 쓴다. 당신은 빗물이고 슬픔일 것이다. 다리로 지은 집은 꼬고 있는 자세로 생각보다 튼튼하다. 상대방을 배척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니 홀로 있을 때 가장 아늑하다. 다리 꼬는 자세를 몸에 짓는 집으로 묘사하며 상대방으로부터 상처를 입었을 때는 당분간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은유로 표현하는 듯하다. 마치 ‘슈필라움’처럼 우리에겐 때로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노을의 방식으로 여자는 빵을 굽고 
 
 남자는 여명으로 은빛 바퀴를 돌린다. 여자는 미세먼지를 수평선으로 가늠하고 남자는 롯데타워가 보이는지로 읽어낸다. 달그림자를 좋아하는 올빼미 족속 그녀, 밤이 되면 눈도 귀도 레이다를 키우고 확실한 그 사람은 레고를 하다가 뉴스가 끝나면 미라처럼 눕는다. 우리 두 사람 빛나는 하이파이브 지점은 하나씩 키우고 있는 턱밑의 까만 점, 같은 위치 다른 방향 도드라진 언어 한 톨, 두 얼굴 세워 접으면 하나로 포개지는, 밀고 끌고 숨 고르는 오래된 기표 하나 
 
 우리가 흔들릴 때마다 제자리로 데려다준다.
         - 정상미, 「데칼코마니 부부」 전문, 󰡔열린시학󰡕, 2022, 봄호 
 
 이 사설시조의 특징은 양면이 대칭을 이루는 데칼코마니의 속성을 반영하여 여자와 남자의 삶의 이미지를 병치하며 균형을 맞춰가는 부부의 삶을 보여주는 구성을 취한다는 것이다. 노을의 방식으로 빵을 굽는 여자가 있다면 여명으로 은빛 바퀴를 돌리는 남자가 있다. 노을이 저녁이면, 여명은 새벽이다. 방향만 다를 뿐 저녁과 새벽이 있어서 하루의 균형이 잡히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머무는 시간의 풍경은 대칭적이다. 또한 “여자는 미세먼지를 수평선으로 가늠하고 남자는 롯데타워가 보이는지” 여부로 미세먼지 농도를 읽어낸다는 구성도 마찬가지다. 롯데타워는 하늘로 치솟은 빌딩이므로 수직선을 갖는 것인데, 이 역시 수직과 수평이 균형을 잡으며 함께 존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여자는 밤에 활동하는 걸 좋아하는데 남자는 밤엔 잠들어 버린다. 이 역시 밤낮의 균형과 조화를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가운데 하이파이브 지점은 턱밑의 까만 점으로 두 사람의 꼭 닮은 기준이다. 그 점을 기준으로 균형을 잡아간다. 다른 건 달라도 공통점은 턱 밑의 까만 점이다. 균형을 잡는다는 의미에서 좌우 대칭으로 조화를 이루는 데칼코마니다. 이렇게 많은 다른 점이 있음에도 턱 밑의 까만 점을 통로 즉, 교집합으로 둔다. 그러면서 함께 소통하고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흔들릴 때마다 까만 점을 제자리로 되돌려놓고 또 균형을 잡으며 나아간다. 다른 환경에서 지낸 다른 사람들이 부부가 되어 만난 것인데 서로 만날 수 있는 소통의 지점을 두고 더불어 살아가는 과정은 중요하다. 부부관계에는 배려와 공감만으로 충족되지 않는 지점이 있다. 각각 다른 공간에 대해 인정하고 존중하는 자세와 타협하며 소통하는 균형의 자세를 데칼코마니의 속성으로 표현한 흥미로운 작품이다. 
 
 
이송희  
 
200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열린시학󰡕 등에 글을 쓰며 평론활동, 고산문학대상, 가람시조문학상 신인상 등 수상, 아르코와 서울문화재단 창작기금 받음. 시집 󰡔수많은 당신들 앞에 또 다른 당신이 되어󰡕 외 4권, 평론집 󰡔거울과 응시󰡕 외 3권, 연구서 󰡔현대시와 인지시학󰡕, 그 외 저서로 󰡔눈물로 읽는 사서함󰡕 등이 있음, 전남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음. 
 
https://youtu.be/qJxTH7DfpYY
우리들의 블루스 ost / 위스키 온더락 / 김연지
https://youtu.be/lkt16yeoX-o
위스키 온더락 / 최성수 원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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