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나는 시를 쓴다/최영미

서해기린 2011. 8. 3. 09:45

 

 

 

 

 

 

아무도 위로해주지 않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혀를 깨무는 아픔 없이
무서운 폭풍을 잠재우려

봄꽃의 향기를 가을에 음미하려
잿더미에서 불씨를 찾으려

저녁놀을 너와 함께 마시기 위해
싱싱한 고기의 피로 더렵혀진 입술을 닦기 위해

젊은날의 지저분한 낙서들을 치우고
깨끗해진 책상서랍을 위해

안전하게 미치기 위해
내 말을 듣지 않는 컴퓨터에 복수하기 위해

치명적인 시간들을 괄호 안에 숨기는 재미에
부끄러움을 감추려, 詩를 저지른다.

 

-최영미- 

 

 

 

얼마 전 시동아리 모임에서 이 시를 알게 되었다.

우리는 왜 시를 쓰는가

나는 왜 시를 쓰는지 생각해 보았다.

시가 좋아서, 내 삶을 정화시키려고,

위안을 얻기 위해, 문우와의 만남이 좋아서, 뭔가 기록을 남기려고...... 시를 쓴다.

 

지금 나는 시를 배우며 시일을 정해 놓고 시를 쓰기도 한다.

가장 안좋은 방법같기도 하지만 또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한 것이

일단 숙제처럼 시작했지만 쓰는 과정에서 진지한 모드로 들어가지며 자신도 모르게 자기만의 시세계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뭘 쓸까 고민하다가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고 그 기억속으로 들어가면 이제 詩場이 펼쳐지는 것이다.

시작은 보잘것 없어도 창대한 끝을 꿈꾸지 않아도 내 시집 하나 엮어 보리라,  작은 꿈도 꾼다.

 

그러나 가장 시를 쓰기 좋은 상태는 아픈 사랑을 할 때이다.

'사랑을 하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는 말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가슴 절절한 이야기

이별, 사별, 절실히 보고픈 것, 가지고 싶은 것, 함께 하고픈 그(그녀)와의 모든 것이 시의 가장 좋은 소재이다.

죽고싶을 때,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절망속에서 시를 쓰기 쉽다.

시는 결핍속에서 나오기 쉽고 이 실연과 절망, 슬픔, 고독의 끝에서 나오는 시야말로 

기쁨, 환희의 순간에서보다 더 전달력이 있고 호소력이 있으며 오히려 빛난다.

 

지금의 나는 이러한 상황과 거리가 멀다.

그래서 솔직히 시를 쓰기가 어렵다.

대안을 끌어내 보니 방법은 대상을 정해 몰두하는 것이다.

과거의 기억속으로 가든지, 영화나 공연, 그림 감상, 책을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 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나 싫어하는 음식에서 끌어와도 좋겠다.

가까운 것에서부터 멀리 있는 것까지 늘어진 모든 것들이 대상이 될 수 있는데

나처럼 풋내기들이 어렵네, 힘드네 하며 갈팡질팡 제자리 맴돌기를 하는 것이다.

 

시인 최영미는

 

아무도 위로해주지 않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치명적인 시간들을 괄호 안에 숨기는 재미에

부끄러움을 감추려, 詩를 저지른다.

 

고 했다. '시를 저지른다'는 표현이 확 와닿는다.

 

나는,

아름다운 세상이 보고싶어서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을 가지려

나만의 세계로 가기 위해

거기서 내 마음대로 놀고싶어 시를 쓰려 한다.

거기서는 내가 미치든지 울든지 웃든지 내 자유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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