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담쟁이/도종환

서해기린 2011. 8. 22. 19:38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도종환-

 

 

 

 

 

 

앞을 가로막는 벽

절망이라고 느끼면

담쟁이를 생각하자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은 없다고

담쟁이는 가르쳐 준다

함께 손잡고 천천히 올라가다 보면

기어이 벽을 넘어서는 그날이 올 테니까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벽들을 만나게 될까

아마 죽을 때까지 그 벽은

잊을 만하면 나타나 나를 흔들어 놓겠지

그러나 나는 그때마다

담쟁이를 떠올리고 용기를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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