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나희덕
바람은 마지막 잎새마저 뜯어 달아난다
그러나 세상에 남겨진 자비에 대하여
나무는 눈물 흘리며 감사한다
길가의 풀들을 더럽히며 빗줄기가 지나간다
희미한 햇살이라도 잠시 들면
거리마다 풀들이 상처를 널어 말리고 있다
낮도 저녁도 아닌 시간에,
가을도 겨울도 아닌 계절에,
모든 것은 예고에 불과한 고통일 뿐
이제 겨울이 다가오고 있지만
모든 것은 겨울을 이길 만한 눈동자들이다
11월/이외수
세상은 저물어
길을 지운다
나무들 한 겹씩
마음 비우고
초연히 겨울로 떠나는 모습
독약 같은 사랑도
문을 닫는다
인간사 모두가 고해이거늘
바람은 어디로 가자고
내 등을 떠미는가
아직도 지울 수 없는 이름들
서쪽 하늘에 걸려
젖은 별빛으로
흔들리는 11월
11월/배한봉
늑골 뼈와 뼈 사이에서 나뭇잎지는 소리가 들린다
햇빛이 유리창을 잘라 거실 바닥에 내려놓은 정오
파닥거리는 심장 아래서 누군가 휘파람 불며 낙엽을 밟고 간다
늑골 뼈로 이루어진 가로수 사이 길
그 사람 뒷모습이 침묵 속에서 태어난 둥근 통증 같다
누군가 주먹을 내지른 듯 아픈 명치에서 파랗게 하늘이 흔들린다
늦가을 비가 추적추적 내렸습니다. 조금은 추운 걸 보니 겨울이 저만치에서 설핏 고개를 내미는 듯 합니다. 얼마 전
아파트에서 찍은 사진들 사이에 <11월>의 시들을 1차로 올려 봅니다. 낙엽이 흩날립니다. 나무는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
가네요. 11월의 질감은 젖은 듯 촉촉하다가 마른 풀잎들 사이로 서걱거립니다. 色은 점차 무채의 세계로 건너가고 마음
저편에서 비인 바람소리 들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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