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천장호에서/나희덕

서해기린 2013. 1. 25. 18:40

 

 

 

 

 

 

 

        

천장호에서

 

얼어 붙은 호수는 아무 것도 비추지 않는다

불빛도 산그림자도 잃어버렸다

제 단단함의 서슬만이 빛나고 있을 뿐

아무 것도 아무 것도 품지 않는다

헛되이 던진 돌멩이들,

새떼 대신 메아리만 쩡 쩡 날아오른다

 

네 이름을 부르는 일이 그러했다

 

 

-나희덕-

 

 

 

 

 

 

 

 

사진은 천장호가 아닌 금오지입니다.

천장호는 충남 청양에 있다고 하네요.

철렁다리가 명물이라 하고 인근의 칠갑산과 더불어 관광명소라고 합니다.

 

이 시는 보편적인 얼어붙은 호수를 표현하다가 마지막의

'네 이름을 부르는 일이 그러했다'에서 큰 울림을 줍니다. 

시인이 사랑하던 사람에게 다가가지 못했거나

그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거나

아니면 혼자만 애끓이는 사랑을 하지 않았나 싶어요.

그런데 이런 일들은 누구나 한두번쯤 겪지 않을까요.

러기에 더 가슴에 와 닿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희덕 시인, 교수  

1966년 2월 8일 (충청남도 논산) 출생

1988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연세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 졸업.
1991 수원 창현고등학교 교사.
2000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2001 한신대학교, 성공회대학교, 연세대학교 출강.
2002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계간 창작과 비평 자문위원.
〈시힘〉 동인.

[상훈]
1989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1998 제17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그곳이 멀지 않다」.
2001 김달진 문학상 「엘리베이터」 외 4편.
2001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수상.
2003 제48회 현대문학상 수상.
2005 일연문학상 수상.
2005 제17회 이산문학상 수상 「엘리베이터」 외 4편.
2007년 제22회 소월시문학상 대상


[시]
『뿌리에게』, 창작과비평사, 1991, 시집.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창작과비평사, 1994, 시집.
『그곳이 멀지 않다』, 민음사, 1997, 시집.
『어두워진다는 것』, 창작과비평사, 2001, 시집.
「마른 물고기처럼」, 『제48회 현대문학상 수상시집』, 현대문학, 2002, 시집.
『사라진 손바닥』, 문학과지성사, 2004, 시집.
「누가 울고 간다」, 『제5회 미당문학상 수상작품집』, 랜덤하우스중앙, 2004, 시집.

[수필]
『반통의 물』, 창작과비평사, 1999, 수필집.
『상상은 겸손한 발걸음이다』 (공저), 상상, 2003, 수필집.

[기타]
『조각이불』, 비룡소, 2001, 번역서.
『모두 잠이 들어요』, 비룡소, 2001, 번역서.
『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창작과비평사, 2003, 논저.

시인의 말

  • 《뿌리에게
    꽃의 향기에 비해 과일의 향기는 육화된 것 같아서 믿음직스럽다. 나의 시가 그리 향기롭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계속 쓰는 이유는, 시란 내 삶이 진솔하게 육화된 기록이기 때문이다. 삶과 시에 대한 이 미더움을 버리지 않고 천천히 익어가고 싶다.
  •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삶의 깊이를 헤아리고 담아내는 일이란 결국 그것의 비참함과 쓸쓸함을 받아들이는 것에 다름아니라는 걸 이제 깨닫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비참함과 쓸쓸함이 또한 아름다움에 이르는 길이기도 하다면, 느릿느릿, 그러나 쉬임없이 그리로 갈 것이다. 매순간 환절기와도 같을 세월 속으로.
  • 《그곳이 멀지 않다
    고통을 발음하는 것조차 소란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것이 안으로 안으로 타올라 한 줌의 재로 남겨지는 순간을 기다려 시를 쓰고는 했다. 그러나 내가 얻은 것은 침묵의 순연한 재가 아니었다. 끝내 절규도 침묵도 되지 못한 언어들을 여기 묶는다. 이 잔해들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의 소음 속으로 돌아갈 운명이라는 걸 알면서도.
  • 《어두워진다는 것》
    언제부턴가 내 눈은 빛보다는 어둠에 더 익숙해졌다. 그런데 어둠도 시에 들어오면 어둠만은 아닌 게 되는지, 때로 눈부시고 때로 감미롭기도 했다. 그런 암전(暗電)에 대한 갈망이 이 저물녘의 시들을 낳았다. 어두워진다는 것, 그것은 스스로의 삶을 밝히려는 내 나름의 방식이자 안간힘이었던 셈이다.
  • 《사라진 손바닥》
    '도덕적인 갑각류'라는 말이
    뢴트겐 광선처럼 나를 뚫고 지나갔다.
    벗어나려고 할수록 더욱 단단해지던,
    살의 일부가 되어버린 갑각의 관념들이여,
    이제 나를 놓아다오.

 

    • <배추의마음> : 작은 생명도 소중히 여기는 마음과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느끼는 생명의 가치를 주제로 한다. 배추를 사람처럼 대하며 자연과 인간이 서로 교감을 나누는 자연 친화적인 모습이 드러나 있으며, 독백체의 어투로 생명존중이라는 마음을 고백한 작품이다.

                <땅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