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비는 때를 알고 내린다(好雨知時節),고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는 그의 시
<춘야희우(春夜喜雨)>에서 읊은 바 있다. 나 사는 곳에도 때맞춰 봄비가 내렸다.
봄이라고 꼼지락거리던 것들을 비가 살짝 어루만지고 가니 여기서 삐죽 저기서 빼죽,
쏙쏙 올라오고 푹푹 터뜨려 준다. 좋은 꽃은 때를 알고 피어난다. 봄이라고 봄물은
녹아 흐르고 나뭇가지 새순은 뾰족이 연둣빛으로 올라온다.
잎보다 먼저 꽃을 피우는 매화, 진달래, 개나리, 산수유, 목련이 어떻게 봄인지 알고
피어나는지 신기하고 기특하다. 예쁘다. 칼같이 매섭던 바람은 순해져 간지르는 것 같고
햇살은 대지를 그윽하게 품어준다.
산수유와 매화가 새색시처럼 피어난 아파트 앞뜰에도 어디서 왔는지 붕붕거리며 꿀벌들이
날아든다. 제짝을 찾는 신랑들 같다. 제비꽃 민들레 꽃다지 냉이꽃이 피어나고 크로바도 연두인가
싶더니 어느새 연초록으로 세(勢)를 넓혀가고 있다.
나이를 잊고 이맘때면 언제나 봄처녀가 된다. 가슴이 두근두근, 얼굴도 활짝, 마음은
넓어져 모든 것을 품을 듯하다. 봄, 봄, 나가고 싶고 만나고 싶다. 느끼고 싶다. 어제는
냉이를 캐고 그제는 쑥을 찾아 나섰다. 천변을 거날고 산에도 오른다. 움츠렸던 몸 기지
개 켜고 나간다.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강아지를 데리고 나오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가볍게
흔들리는 강아지 꼬리에 발걸음에 봄이 느껴진다. 산길 초입에는 알록달록 등산복차림의
사람들이 솔찮게 올라가고 새들은 빠르게 리듬을 타며 날아간다. 풀도 나무도 꽃들도 들썩
거리고 내 마음에도 아름다운 세상이 하나 들어앉았다.
'정상미 수필 &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랜 장미 꽃바구니 (0) | 2013.12.13 |
---|---|
고추를 따며 (0) | 2013.08.16 |
떨켜 (0) | 2012.11.01 |
걷자 (0) | 2012.09.28 |
정전 소동 (0) | 2011.09.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