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만개해 온세상이 환하네요
시인들은 벚꽃을 어떻게 노래했는지 찾아봤어요.
그중 몇 편을 골라 올려 봅니다.
벚꽃 / 조향순
오든지 가든지
상관하지 않을게야
상관하기로 한다면야,
이별하기 위한 사랑
지기 위해 핀 짓거리를
용서할 수 있으랴
내 잠든 밤사이에
지나가는 바람이
슬쩍 옆구리만 건드려도
옳다구나 훌쩍 따라갈 눈치이니
차라리,
가든지 말든지
내 너를 아예 모르기로 했다
- 시집 <풀리는 강가에서>
벚나무는 건달같이 / 안도현
군산 가는 길에 벚꽃이 피었네
벚나무는 술에 취해 건달 같이 걸어가네
꽃 핀 자리는 비명이지마는
꽃 진 자리는 화농인 것인데
어느 여자 가슴에 또 못을 박으려고…
돈 떨어진 건달같이
봄날은 가네
벚꽃, 아프다 / 이규리
봄이라는 조산원
애비가 누군지도 모른 채
느닷없이 임신하고 곧이어 분만했네
조산인가 봐
병원 복도 같은 군산 가도
간호사들이 뛰어가고 달려오고
종일 구급차가 지나가네
들어선 애도 떨어지겠네
숨은 애비들은 다 누구야
특수 조명 탓인가
마주치는 얼굴들 다 흰죽 같아
흐드러진 꽃 아래 이곳저곳 맘 솔기가 툭툭 터지네
옆사람
손을 잡고 풀쩍풀쩍 뛰었는대
끌어안고 어디 물컹 닿았는데
나중에 보니 모르는 사람이네
살아 반짝하는 날 며칠이냐고
내일은 내일 걱정하자고
간덩이까지 훤해지는 날
추억은 이렇게 남기는 거야
손바닥만한 디카 속으로
카메라폰 속으로
꽃인 듯 사람인 듯 쭉쭉 빨아들이며
돌아갈 일 걱정도 않고
조산아들 종일 햇볕에 뉘어 놓으며
-시집 <뒷모습>
산벚꽃나무 / 나태주
뒤로 물러서려다가
기우뚱
벼랑 위에 까치발
재겨 딛고
어렵사리 산벚꽃나무
몸을 열었다
알몸에 연분홍빛
홑치마 저고리 차림
바람에 앞가슴을
풀어 헤쳤다
벚꽃이 훌훌 / 나태주
벚꽃이 훌훌 옷을 벗고 있었다
나 오기 기다리다 지쳐서 끝내
그 눈부신 연분홍빛 웨딩드레스 벗어던지고
연초록빛 새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벚꽃잎이 / 이향아
벚꽃잎이 멀리서 하늘하늘 떨리었다
떨다가 하필 내 앞에서 멈추었다
그 눈길이 내 앞을 운명처럼 막았다
가슴이 막히어서 숨을 쉴 수 없었다
나는 흐느끼었다
이대로 죽어도 좋아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았다
두 번 다시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없었다
벚꽃잎은 계속 지고 있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지요.
여기도 벚꽃 저기도 벚꽃
사람들은 꽃그늘 아래서
셔터를 눌러대고
목마를 태우고
꽃가지를 꺾어 머리에 귀에 꽃으며
행복한 얼굴로 봄 속에 녹아듭니다.
이 꽃 오래 버텨줘야 사람들 꽃 핀 얼굴,
아이 같은 얼굴 유효기간도 길어질텐데
내일 비가 온다니 봄비도 반갑지만은 않네요. ㅎ
벚꽃 필 때 보자 했다
꽃은 피었는데
혼자서는 나서지 못해
꽃이 지고 있다
꽃이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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