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벚꽃 관련시 모음 -조향순, 안도현, 이규리, 나태주, 이향아 시인

서해기린 2014. 4. 2. 13:49

 

 

 

벚꽃이 만개해 온세상이 환하네요

시인들은 벚꽃을 어떻게 노래했는지 찾아봤어요.

그중 몇 편을 골라 올려 봅니다.

 

 

 

 

 

 

 

 

벚꽃 / 조향순

 

 

오든지 가든지

상관하지 않을게야

 

상관하기로 한다면야,

이별하기 위한 사랑

지기 위해 핀 짓거리를

용서할 수 있으랴

 

내 잠든 밤사이에

지나가는 바람이

슬쩍 옆구리만 건드려도

옳다구나 훌쩍 따라갈 눈치이니

 

차라리,

가든지 말든지

내 너를 아예 모르기로 했다

 

 

 

                    - 시집  <풀리는 강가에서>

 

 

 

 

 

 

 

 

 

벚나무는 건달같이 / 안도현

 

 

군산 가는 길에 벚꽃이 피었네

벚나무는 술에 취해 건달 같이 걸어가네

 

꽃 핀 자리는 비명이지마는

꽃 진 자리는 화농인 것인데

 

어느 여자 가슴에 또 못을 박으려고

 

돈 떨어진 건달같이

봄날은 가네

 

 

 

 

 

 

 

 

벚꽃, 아프다 / 이규리

 

 

봄이라는 조산원

애비가 누군지도 모른 채

느닷없이 임신하고 곧이어 분만했네

조산인가 봐

병원 복도 같은 군산 가도

간호사들이 뛰어가고 달려오고

종일 구급차가 지나가네

들어선 애도 떨어지겠네

숨은 애비들은 다 누구야

특수 조명 탓인가

마주치는 얼굴들 다 흰죽 같아

흐드러진 꽃 아래 이곳저곳 맘 솔기가 툭툭 터지네

옆사람

손을 잡고 풀쩍풀쩍 뛰었는대

끌어안고 어디 물컹 닿았는데

나중에 보니 모르는 사람이네

살아 반짝하는 날 며칠이냐고

내일은 내일 걱정하자고

간덩이까지 훤해지는 날

추억은 이렇게 남기는 거야

손바닥만한 디카 속으로

카메라폰 속으로

꽃인 듯 사람인 듯 쭉쭉 빨아들이며

돌아갈 일 걱정도 않고

조산아들 종일 햇볕에 뉘어 놓으며

 

            -시집 <뒷모습>

 

 

 

 

 

 

 

 

산벚꽃나무 / 나태주

 

 

뒤로 물러서려다가

기우뚱

 

벼랑 위에 까치발

재겨 딛고

 

어렵사리 산벚꽃나무

몸을 열었다

 

알몸에 연분홍빛

홑치마 저고리 차림

 

바람에 앞가슴을

풀어 헤쳤다

 

 

 

 

 

 

 

 

벚꽃이 훌훌 / 나태주

 

 

벚꽃이 훌훌 옷을 벗고 있었다

나 오기 기다리다 지쳐서 끝내

그 눈부신 연분홍빛 웨딩드레스 벗어던지고

연초록빛 새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벚꽃잎이  / 이향아

 

 

벚꽃잎이 멀리서 하늘하늘 떨리었다

떨다가 하필 내 앞에서 멈추었다

그 눈길이 내 앞을 운명처럼 막았다

가슴이 막히어서 숨을 쉴 수 없었다

나는 흐느끼었다

이대로 죽어도 좋아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았다

두 번 다시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없었다

벚꽃잎은 계속 지고 있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지요.

여기도 벚꽃 저기도 벚꽃

사람들은 꽃그늘 아래서

셔터를 눌러대고

목마를 태우고

꽃가지를 꺾어 머리에 귀에 꽃으며

행복한 얼굴로 봄 속에 녹아듭니다.

이 꽃 오래 버텨줘야 사람들 꽃 핀 얼굴,

아이 같은 얼굴 유효기간도 길어질텐데

내일 비가 온다니 봄비도 반갑지만은 않네요. ㅎ

 

 

 

 

 

 

 

벚꽃 필 때 보자 했다

꽃은 피었는데

혼자서는 나서지 못해

꽃이 지고 있다

꽃이 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