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벚꽃 관련시 모음 2- 이외수, 오세영, 용혜원, 김용택, 황동규, 황지우,

서해기린 2014. 4. 3. 20:49

 

 

 

 

 

 

벚꽃 / 이외수

 

 

오늘 햇빛 이렇게 화사한 마을

빵 한 조각을 먹는다

아 부끄러워라

나는 왜 사나

 

 

 

 

 

 

 

 

 

 

벚꽃 / 오세영

 

 

죽음은 다시 죽을 수 없으므로

영원하다.

이 지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영원을 위해 스스로

독배(毒杯)를 드는 연인들의

마지막 입맞춤같이

벚꽃은

아름다움의 절정에서 와르르

무너져 날린다.

 

종말을 거부하는 의식(儀式),

정사(情死)의 미학.

 

 

 

 

 

 

 

 

 

벚꽃 피던 날 / 용혜원

 

 

겨울 내내

드러내지 않던

은밀한 사랑

 

견디다 못해

어쩌지 못해

봄볕에 몸이

화끈하게 달더니

 

온 세상 천지에

소문 내고 있구나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는구나

웃음꽃 활짝 피워

감동시키는구나

 

 

 

 

 

 

 

 

 

산벚꽃 / 김용택

 

 

저 산 너머에 그대 있다면

저 산을 넘어 가보기라도 해볼텐데

저 산 산그늘 속에

느닷없는 산벚꽃은

웬 꽃이다요

 

저 물 끝에 그대 있다면

저 물을 따라가보겠는데

저 물은 꽃 보다가 소리 놓치고

저 물소리 저 산허리를 쳐

꽃잎만 하얗게 날리어

흐르는 저기 저 물에 싣네

 

 

 

 

 

 

 

 

 

산벚꽃 나타날 때 / 황동규

 

 

물 오른 참나무 사이사이로 산벚꽃 나타날 때

더도말고

전라북도 진안군 한 자락을 한나절 걷는다면

이 지상살이 원(願) 반쯤 푼 것으로 삼으리.

장수 물과 무주 물이 흘러와 소리 죽이며 서로 몸을 섞는

죽도 근처

아니면 조금 아래

댐의 크기가 조금씩 불어나고 있는 용담 근처,

알맞게 데워진 공기 속에 새들이 몸 떨며 날고

길가엔 조팝꽃 하연 정(情) 뿜어댈 때

그 건너 색깔 딱히 부르기 힘든 물오른 참나무들

사이사이

구름보다 더 하늘 구름 산벚꽃 구름!

그 찬란한 구름장들 여기저기 걸어 놓고

그 휘장들을 들치고 한번 안으로 들어간다면

 

 

 

 

 

 

 

 

 

 

수은등 아래 벚꽃 / 황지우

 

 

사직공원(社稷公園) 비탈길,

벚꽃이 필 때면

나는 아팠다

견디기 위해

도취했다

피안에서 이쪽으로 터져나온 꽃들이

수은등을 받고 있을 때 그 아래에선

어떤 죄악도 아름다워

아무나 붙잡고 입맞추고 싶고

맨 소주병으로 긋고 싶은 봄밤이었다

 

사춘기 때 수음 직후의 그

죽어버리고 싶은 죄의식처럼,

그 똥덩어리에 뚝뚝 떨어지던 죄처럼,

벚꽃이 추악하게 다 졌을 때

나는 나의 생이 이렇게 될 줄

그때 이미 다 알았다

 

이제는 그 살의의 빛,

그 죄마저 부럽고 그립다

이젠 나를 떠나라고 말한,

오직 축하해주고 싶은,

늦은 사랑을

바래다주고 오는 길에서

나는 비로소

이번 생을 눈부시게 했던

벚꽃들 사이 수은등을 올려다본다

 

 

 

 

 

 

 

그새 벚꽃이 지고 있습니다.

여린 꽃잎들은 오늘 밤 비바람에 전멸할 것 같아요.

늘 그랬듯 확 달아올랐다 이내 다 내려놓는 저들이지요. 

 

오늘 군대간 ROTC 출신  친정조카가 휴가차 작은 집에 들른 김에

이모도 보고싶다며 찾아왔네요.

그래서 벚꽃 흩날리는 길을 걸어 금오지도 한바퀴 돌고

들길을 거쳐 돌아오며 텃밭도 보여주었습니다.

 

 

 

 

 

마지막 꽃이라도 본다며 쏟아져 나온 상춘객들,

솜사탕, 뻥튀기, 찹쌀 도넛, 찰옥수수, 찹쌀호떡, 회오리 감자, 타코야끼 같은 온갖 먹을 것들,

호박엿, 콩엿, 깨엿을 파는 각설이들,

초상화 그려주는 사람들, 음악이 흐르는 축제무대 등으로

선주원남로 금오산 벚꽃길 축제는 북적이고 있었어요.

 

 

 

 

 

 

축제는 정작 오늘부터 시작인데 꽃은 지난 주부터 피어 벌써 지고 있네요.

사람들은 진즉 꽃이 피었다는 걸 듣거나 보아서 알고는

너도나도 꽃구경을 나옵니다.

낮에는 낮대로 밤에는 밤대로 붐비는데 밤이 더 많아 보이네요.

 

요즘 젊은이들은 사랑표현도 대담해서 누가 보든지 말든지

과감하게 끌어안고 키스하고 합니다.

귀여운 기습뽀뽀도  종종 목격했지요.

뭐 나쁘지 않아요.

세상이 변했으니까요.^^

 

 

 

 

 

내일 아침에 나가면 벚꽃잎 하얗게 떨어진 길을

꽃잎 밟으며 가게 되겠지요.

내가 그들의 마지막을 애도하는 방법은 이것과  

좀 더 올라가 금오지 수면에 떠 있는 그들을 나만의 눈길로

오래 바라보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