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미 수필 & 산문

싸움 구경

서해기린 2011. 7. 19. 10:37

 

 

 

사람들이 싸우면 우선 말려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내가 말려야 할 게 있고 구경할 게 있는 것 같다.  나와 관련된 가까운 사람이 싸우면 무조건 말려야 하겠지만 아무 관련 없는 사람이 공공 장소에서 싸우면 일단 지켜보게 된다. 그러다 어느 정도 상황파악이 되면 말리든지 구경을 하든지 도움을 요청하든지 신고를 하게 될 것이다. 아파트에서 뜻하지 않게 싸움 구경을 하게 되었다. 

 

일찍 잠자리에 드는 그는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고 나와 아이들은 거실에서 컴퓨터와 스마트폰,  TV로 놀고 있었다. 갑자기 밖이 소란해 자동으로 창밖을 내다보게 되었다. 남자들이 큰소리로 싸우고 있었는데 앞동과 우리동 사이에 난 단지 내 주도로에 자동차 두 대가 나란히 서 있는 것으로 보아 앞차가 지체해 뒤차에서 빨리 길을 터달라고 하며 시비가 붙었나보다.

 

우리 집은 2층이고 바로 앞에서 싸움이 벌어져 비교적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우선 쌍시옷이 난무하고 개XX가 어지럽게 쏟아져 나왔다. 앞차에 젊은 남자 두 명과 그 둘중 한 남자의 임신한 아내가, 뒤차에는 중년 남자 두 명이 탔다가 모두 나와서 얽히고 설켜 있었다. 젊은 남자들이 중년의 남자들에게 버릇없게 대들고 욕을 하고 심하진 않지만 손이 나가기도 했다. 앞차중 한 남자는 술이 취했는지 이성을 잃은 것 같았다.

  "이리 와, 이늙은 새끼야." 

그의 여자가 부른 배를 하고 말리려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러댔다. 심심할 만 하면 인터넷에 일부 몰지각한 젊은이들이 노인을 무시하고 욕하며 때리는 동영상이 돌아 혀를 차게 만들더니 우리 아파트에서도 이 무슨 꼴인지……

 

다섯 사람이 모두 크게 욕을 하든지 소리를 질러 대니 마주보는 온 아파트 사람들이 창문으로 보며 혹은 바깥으로 나와 구경을 하고 시끄럽다고 같이 욕을 하다가 난리도 아니었다. 경비 아저씨들이 말려도 소용이 없고 한참을 그렇게 싸우니  창문마다 사람들이 붙어서서 한마디씩 거들었다.

  "잠 좀 자자, 이 XX들아."  

  "거 좀 조용히 합시다."

그러자 술취한 남자가 더 열을 받았다.

  "야, 이XX 너 빨리 내려 와."  가관도 아니었다. 결국 아들은 밖으로 나가서 구경을 했다.  그는 문이 닫혀 듣지 못하는지 잠이 들었는지 기척도 없었다.

 

사이렌이 울리고 경찰차가 정문 쪽으로 들어 왔다. 그러자 한 중년 남자가 갑자기 땅바닥에 대자(大字)로 드러 누웠다. 멀쩡히 있다가 경찰이 보이니 바로 드러눕는 꼴이 얼마나 웃기던지……

  "때려 봐! 때려 봐!", 하며 약을 올리자 젊은 남자가 욕을 하며 달려들려 했다. 배부른 여자가 울면서 누운 남자 위를 그대로 덮어 자기 남편의 폭력을 막았다. 비로소 경찰이 다가오자 중년 남자도 뭐라뭐라 큰 소리를 냈다. 여자가 꿇어 앉아 손을 파리 모양으로 비비며 용서해 달라고 울면서 애원했다. 다른 건 구경거리지만 여자는 불쌍했다. 뱃속 아이가 얼마나 놀랐을까.

 

경찰이 와도 소란을 피우고 대들고 하다가 결국 당사자 모두를 경찰이 데려가면서 진정이 되었다.  소란의 주인공 젊은 남자 부부는 아파트 주민이라고 했다.

 "아이구! 남사시럽어 못살겠다. 저런 사람이 이웃이라니.  어디 가서 우리 아파트 산다고 하지 마래이. "

3층 아줌마였다.  자기 아들과 우리 아들에게 한 말인가 보다.

 

 경비 아저씨 둘이 열심히 손전등을 들고 뭔가를 찾고 있었다. 알고 보니 말리다가 한 대 맞고 그 와중에 떨어진 명찰을 찾는 거란다. 갑자기 한 경비가 다른 경비더러 크게 한 마디 한다.

"이 사람아, 우리 주민인데 말려야지 구경만 하고 있으면 어떡하나?"

고참이 신참 경비한테 하는 훈계였다.

 

아이들은 동영상을 찍었어야 했다고 웃었다. 그랬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구경꾼이 많았으니 누구라도 찍어 올릴 수도 있겠다.

세상 참 재미있다. 한꺼번에 여러 사람들이 살아가는 군상을 보았다. 싸움은 말려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이 싸움은 피가 난 것도 아니고 몇 대 오가긴 했어도 모든 사람이 멀쩡했다. 가볍게 때리는 시늉만 하다가, 욕하고 소리만 지르다가  아파트를 다 뒤집어 놓고 싱겁게 끝난 활극이었다. 코미디 같았다. 긴 장마에 심심할까 봐 그랬나 씁쓸한 웃음이 가시지 않는다.

 

사람들은 왜 싸우는 것일까. 조금만 양보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면 일어나지 않을 일들, 불쾌지수가 높은 장마철엔 유독 사소한 시비가 큰 싸움으로 번지기도 한다. 심하면 살인까지 하는 경우를 보도에서 종종 접한다.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조금만 참자, 입장을 바꿔 생각하자,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야 할 아름다운 세상이지 않냐고.

부른 배를 한 만삭의 여자가 걱정된다. 오늘 싸움의 주인공들 중 유일하게 제대로 된 생각과 행동을 했던 사람이다. 그녀의 뱃속에서 놀라고 무서워 떨었을 아기, 예쁘고 고운 것만 보이고 들려주다가 순산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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