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홀로서기/서정윤

서해기린 2011. 11. 4. 21:27

 

 

 

   

 

둘이 만나 서는 게 아니라

홀로 선 둘이가 만나는 것이다.

 

1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가슴아프면 아픈 채로

바람불면 고개를 높이 쳐들면서,

날리는

아득한 미소

어디엔가 있을

나의 한 쪽을 위해

헤매이던 숱한 방황의 날들

태어나면서 이미

누군가 정해졌었다면,

이제는 그를 만나고 싶다.

 

 


2
홀로 선다는 건
가슴을 치며 우는 것보다 더 어렵지만
자신을 옭아맨 동아줄, 그 아득한 끝에서 대롱이며
그래도 멀리, 멀리 하늘을 우러르는 이 작은 가슴,
누군가를 열심히 갈구해도
아무도 나의 가슴을 채워출 수 없고
결국은 홀로 살아간다는 걸
한겨울의 눈발처럼 만났을 때
나는 또 다시 쓰러져 있었다.

 

  


3
지우고 싶다. 이 표정 없는 얼굴을.
버리고 싶다. 아무도 나의 아픔을 돌아보지 않고
오히려 수렁 속으로 깊은 수렁 속으로 밀어넣고 있는데
내 손엔 아무것도 없으니
미소를 지으며 체념할 수밖에
위태위태하게 부여잡고 있던 것들이
산산이 부서져 버린 어느날, 나는
허전한 뒷모습을 보이며 돌아서고 있었다.

 

 

  


 

 

4
누군가가 나를 향해 다가오면
나는 '움찔' 뒤로 물러난다.
그러다가 그가
나에게서 멀어져 갈 땐
발을 동동 구르며 손짓을 한다.
만날 때 이미 헤어질 준비를 하는 우리는,
아주 냉담하게 돌아설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아파오는 가슴 한 구석의 나무는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떠나는 사람은 잡을 수 없고
떠날 사람을 잡는 것만큼 자신이 초라할 수 없다.
떠날 사람은 보내어야 한다.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일지라도

 

  


5
나를 지켜야 한다.
누군가가 나를 차지하려 해도
그 허전함 아픔을 또 다시 느끼지 않기위해
마음의 창을 꼭꼭 닫아야 한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얻은 이 절실한 결론을
<이번에는> <이번에는>하며 어겨보아도
결국 인간에게서는
더 이상 바랄 수 없음을 깨달은 날
나는 비록 공허한 웃음이지만 웃음을 웃을 수 있었다.
아무도 대신 죽어주지 않는 나의 삶
좀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6
나의 전부를 벗고
알몸뚱이로 모두를 대하고 싶다.
그것 조차 가면이라고 말할지라도
변명하지 않으며 살고 싶다.
말로써 행동을 만들지 않고
행동으로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혼자가 되리라
그 끝없는 고독과의 투쟁을 혼자의 힘으로 견디어야 한다.
부리에 발톱에 피가 맺혀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숱한 불면의 밤을 새우며
<홀로서기>를 익혀야 한다

 

  


7
죽음이 인생의 종말이 아니기에
이 추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살아있다
나의 얼굴에 대해 내가 책임질 수 있을 때까지
홀로임을 느껴야 한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홀로 서고 있을,
그 누군가를 위해 촛불을 들자.
허전한 가슴을 메울 수는 없지만 <이것이다>하며 살아가고 싶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사랑을 하자

 

-서정윤-

 

 

 

 

오늘 아침 모 방송에서 서정윤 시인을 보았다.

대구 어느 중학교에서 국어 교사를 한다는 그를

화면으로나마 처음 만났다.

시인은 깊어가는 가을에 문학과 시를 얘기했다.

나도 이십대 젊은 날에 

홀로서기 시집을 사서 얼마나 애송했던가.

홀로서기란 단어도 그때부터 회자되어

사전의 한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시를

'영혼을 씻어 주는 맑은 물' 이라 했다.

때묻은 영혼을 씻기 좋은 계절이다.

저토록 아름다운 단풍을 보며

어찌 맑아지지 않고 배기겠는가.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며

생각도 많아지는 요즘이다.

시의 숲에서 시의 강에서 세상을 봐 보자.

널려 있는 시를 가져다 읽어 보자.

 

가을엔 누구나 시인이 된다는 말도

달리 있는 게 아닐 것이다.

시를 쓰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시를 많이 접하고 필사하고 낭송하고

어떤 대상을 두고 깊이 관찰하고, 생각하며

남이 쓰지 않는 자기만의 언어표현을 하는 것이

시를 잘 쓰는 비결이라고 시인들은 말한다.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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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엔가 있을

나의 한 쪽을 위해

헤매이던 숱한 방황의 날들

태어나면서 이미

누군가 정해졌었다면,

이제는 그를 만나고 싶다

 

 

 

 

세월을 한참 건너 뛰어

이 시를 다시 적어 본다.

나는 홀로섰던가.

아직도 휘청이는가.

열심히 살아가고

열심히 사랑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