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 시인의 시 몇 편 감상해 보세요.
이 시들은 2012년 이전에 나온 것들인데
어때요? 女와 餘(여)를 전공한 것 같나요?
과감하고 거침없이 그러나 나직하게 독백하듯이
솔직하게 쓰기도 하는 것 같아요.
얼레지/김선우
옛 애인이 한밤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자위를 해본 적 있느냐
나는 가끔 한다고 그랬습니다
누구를 생각하며 하느냐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랬습니다
벌 나비를 생각해야만 꽃이 봉오리를 열겠니
되물었지만, 그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얼레지……
남해 금산 잔설에 남아 있던 둔덕에
딴딴한 흙을 뚫고 여린 꽃대 피워내던
얼레지꽃 생각이 났습니다
꽃대에 깃드는 햇살의 감촉
해토머리 습기가 잔뿌리 간질이는
오랜 그리움이 내 젖망울 돋아나게 했습니다
얼레지의 꽃말은 바람난 여인이래
바람이 꽃대를 흔드는 줄 아니?
대궁 속의 격정이 바람을 만들어
봐, 두 다리가 풀잎처럼 눕잖니
쓰러뜨려 눕힐 상대 없이도
얼레지는 얼레지
참숯처럼 뜨거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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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이미지가 얼레지 꽃입니다.
꽃말은 바람난 여인, 질투,
꽃은 아래만 보고 핀답니다.
여인은 혼자서도 바람이 날까요?
벌나비 없어도
꼭 누군가를 생각하지 않아도
얼레지처럼 혼자 피어날 수 있을까요?
있다, 혹은 없다,
耳懸鈴卑懸鈴(이현령비현령)이겠죠.
즉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거죠.
생물학적으로 따지자면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꼭 남자가 필요하겠지만
정신적으로 어느 한도를 뛰어넘으면
혼자서도 뜨거워질 수 있지 않을까요.^^
할미꽃/김선우
키 작은, 햇볕을 탐하지 않아 아주 작은 그녀는
발목 밑을 떠도는 바람의 한숨을 듣지
하필 무덤가 같은 곳에서 그녀와 마주칠 때 사람들은 말하지
다소곳한 자태!
더러는 그녀에게
외진 데 거하는 이의 슬픔을 읽기도 하지
그럴 때면 그녀는 어깨 더욱 곱수그려
삐딱하게 머리채 흔들며 킬킬, 혼자 웃는다네
약속을 위해 꽃잎을 떨구지 않지
그녀는 하르르 눈물로 지는 꽃들을 경멸한다네
검버섯 피워 물며 갈갈이 백발 풀어헤친,
여전히 삐딱한 고갯짓이 당신 발목을 붙잡을지도 모른다네
어쩌면 당신은 자신의 해골 냄새를 맡게 될 수도 있지
태어나자마자 늙어버리길 소망한 그녀,
바위를 쪼개며 생장하는 뿌리를 거부한 그녀가
어느날 당신에게 말을 걸어올것이네
“잘 봐, 이게 다야!” 당신과 나 사이에 피어 있는 할미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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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하필 할미꽃이라
예쁘고 앙증스러워도 할미군요.
돌아가신 제 할머니가 생각 납니다.
꽃대가 꼬부라져서 할미꽃이라 이름 붙였을까요.
봄날 오후/김선우
늙은네들만 모여앉은 오후 세시의 탑골공원
공중변소에 들어서다 클클 연지를
새악시처럼 바르고 있는 할마시 둘
조각난 거울에 얼굴을 서로 들이밀며
클클, 머리를 매만져주며
그 영감탱이 꼬리를 치잖여 ─ 징그러바서,
높은 음표로 경쾌하게
날아가는 징 · 그 · 러 · 바 · 서 ,
거죽이 해진 분첩을 열어
커티분을 꼭꼭 찍어바른다
봄날 오후 세시 탑골공원이
꽃잎을 찍어놓은 젖유리창에 어룽어룽,
젊은 나도 백여시처럼 클클 웃는다
엉덩이를 까고 앉아
문밖에서 도란거리는 소리 오래도록 듣는다
바람난 어여쁜 엄마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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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마시라고 바람나지 말라는 법 없지요.
할머니들이 바람나면 더 귀여울 것 같아요.
김선우 시인도 자신의 어머니가 바람났으면 좋겠다고
그러면 더 어여쁠 것 같아서 저렇게 쓴 것이겠지요.
우리 엄마도 바람 좀 나도 괜찮은데…… ㅎㅎ
포구의 방/김선우
생리통의 밤이면
지글지글 방바닥에 살 붙이고 싶더라
침대에서 내려와 가까이 더,
소라 냄새 나는 베개에 코 박고 있노라면
푸른 연어처럼
나는 어린 생것이 되어
무릎 모으고 어깨 곱송그려
앞가슴으론 말랑말랑한 거북알 하나쯤
더 안을 만하게 둥글어져
파도의 젖을 빨다가 내 젖을 물리다가
포구에 떠오르는 해를 보았으면
이제 막 생겨난 흰 엉덩이를 까부르며
물장구를 쳤으면 모래성을 쌓았으면 싶더라
미열이야 시시로 즐길 만하게 되었다고
큰소리쳐놓고도 마음이 도질 때면
비릿해진 살이 먼저 포구로 간다
붓다도 레닌도 맨발의 내 어머니도
아픈 날은 이렇게 온종일 방바닥과 놀다 가려니
처녀 하나 뜨거워져 파도와 여물게 살 좀 섞어도
흉되지 않으려니 싶어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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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한 여성시네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여자들은 달거리 손님을 맞으면
생활리듬이 확 달라집니다.
스트레스도 동반되지요.
면역력이 떨어져 각종 질병에 걸리기도 쉽습니다.
제자리를 찾는데 다소 시간이 걸립니다.
여자들만의 이야기를 이렇게 거침없이 쓰는 김 시인은
확실히 여성시의 대표주자라 하겠습니다.
아픈 날은 이렇게 온종일 방바닥과 놀다 가려니
처녀 하나 뜨거워져 파도와 여물게 살 좀 섞어도
흉되지 않으려니 싶어지더라
공감 100%입니다.
김선우 시인이 장차 문단에서
女와 餘를 어루만져 주는 더 큰 활약을 해 주리라 믿으며
주절주절 올려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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