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넘어가면
당신이 더 그리워집니다
잎을 떨구며
피를 말리며
가을은 자꾸 가고
당신이 그리워
마을 앞에 나와
산그늘 내린 동구길 하염없이 바라보다
산그늘도 가버린 강물을 건넙니다
내 키를 넘는 마른 풀밭들을 헤치고
강을 건너
강가에 앉아
헌옷에 붙은 풀씨들을 떼어내며 당신 그리워 눈물납니다
못 견디겠어요
아무도 닿지 못할
세상의 외롬이
마른 풀잎 끝처럼 뼈에 와 닿습니다
가을은 자꾸 가고
당신에게 가 닿고 싶은
내 마음은 저문 강물처럼 바삐 흐르지만
나는 물 가버린 물소리처럼 허망하게
빈 산에 남아
억새꽃만 허옇게 흔듭니다
해 지고
가을은 가고
당신도 가지만
서리 녹던 내 마음의 당신 자리는
식지 않고 김납니다
-김용택-
섬진강 시인으로 불리는 김용택 시인의 시에는 강이 단골로 나오고 풀과 산도 자주 보입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산골마을에 살아서 그런지
순수하고 섬세한 면이 엿보이기도 하며 여성시처럼 여리고 부드럽고 그리움이 뚝뚝 떨어지기도 합니다. 지난 봄 매화마을과 섬진강에 갔을 때
김용택 시인이 저 강줄기 어드메쯤에 계시겠구나, 생각했지요. 섬진강은 시인으로 인해 더 유명해졌는지도 모릅니다.
낙엽 흩어지고 나뭇가지 앙상하게 바람소리만 내고 억새꽃 하얗게 일렁이면 그리운 사람 생각이 나겠지요. 그 사람 더욱 그리워지겠지요.
우리는 모두 외로운 존재, 애초에 그리움병을 타고난 족속들, 그러니 그리워지면 그리운대로 마음껏 그리워해야……
해 지고
가을은 가고
당신도 가지만
서리 녹던 내 마음의 당신 자리는
식지 않고 김납니다, 라는 마지막 부분이 오래 머물고 있네요.
지난 시월에 대구 봉무공원내 단성지에서 찍은 것인데 식물의 이름을 몰라요. 아시는 분은 좀 가르쳐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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