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가득한 대낮
지금 나하고 하고 싶어?
네가 물었을 때
꽃처럼 피어난
나의 문자(文字)
"응"
동그란 해로 너 내 위에 떠 있고
동그란 달로 나 네 아래 떠있는
이 눈부신 언어의 체위
오직 심장으로
나란히 당도한
신의 방
너와 내가 만든
아름다운 완성
땅 위에
제일 평화롭고
뜨거운 대답
"응"
- 문정희 -
아파트의 산수유
언어와 시의 조합이 기가 막히다.
환상적인 동거다.
'응'이란 글자에 숨겨진 '이 눈부신 언어의 체위'
그러고 보면 시인은 문자 하나라도 자세히 들여다 보아야 하는 사람이다.
풀꽃뿐만 아니라 한 음절 문자까지도 그냥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
놀이터 옆 벚나무
얼마 전 시창작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제안으로 장난을 좀 쳐 봤다.
애인이든 배우자든 사랑하는 대상에게 일제히 문자를 보냈다.
"지금 나랑 해 보고 싶어?"
'하고 싶어?'가 아닌 '해 보고 싶어?'였는데
가장 문학적이고 시적詩的인 대답이 나오면 상賞을 주기로 했다.
이 남자들 어떤 답을 보냈을까?
성질 급한 몇몇은 다짜고짜 전화부터 해댔다.
뜬금없이 그런 문자를 받았으니 그러기도 했겠지만
혹자는 이런걸 받았다.
"점심시간에 살짝 들를게, 준비하고 있어."
"마치자마자 갈 테니 꽃단장 하고 기다려."
단지내 꽃사과
또 혹자는
'약 먹었나?'
'어디 아프나?'
'해 말고 달 보고 싶은데'
'지금 말고 저녁에'
'물론이지!'
뭐 이런 거였다.
결국 한바탕 웃고 시상자는 없는 걸로 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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