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여승女僧/ 백석

서해기린 2013. 10. 16. 11:51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山 깊은 금점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  백석 / 백석시전집」, 창작과비평사

 

 

 

 

 

 

 

 

 

 

 

 

 

가을이 깊어갑니다. 오늘 아침은 정말 쌀쌀했지요.

뒤늦은 나이에 시와 수필 같은 것을 배워 본다고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기왕이면 제대로 배워보자고 방송대 국문과 3학년에 편입했고 이제 마지막 학기네요.  

<성,사랑,사회>라는 과목이 있는데 페미니즘 관련 서적 두 권을 읽고 과제물을 써야 합니다.

모레까지 마감인데 진도가 나가질 않네요. 이렇게 블로그나 들락거리고.^^

 

 

 

          

 

 

 

가을인데

이 계절에 맞는 시가 없을까 찾아보다가 백석시를 한 편 골랐습니다.

가난과 결핍의 고단한 시대를 살며 그냥 지나치지 않고  노래한 시인이 있어 

우리는 그 시절을 체험하고 느낄 수 있는 것이겠지요.

오늘같이 쌀쌀한 시월의 오전에 차 한 잔 앞에 두고  

백석의 시 속으로 걸어 들어가 봅니다.

 

그 시대를 생각해 보다가

가지취 내음새가 나는 쓸쓸한 낯빛의 여승이 되어 있다가,  백석이 되었다가

저는 또 가난이란 단어가 그리 낯설지 않았던

제 추억 같은 지난 날로 돌아가 생각에 잠깁니다. 

 

 

 

 

                                                천변에 핀 고마리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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