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아이들 어릴 때 썼던 것을 근래에 좀 고쳐 본 것이다.)
콩죽 쑤던 날/정상미
아침에 콩죽을 쑤어 먹었다. 콩죽은 어렸을 때부터 가끔 먹어서 그런지 내 입에는 고소하고 맛있기 그지없다. 그도 금세 한 사발을 다 비웠지만 아이들은 별로 반기지 않았다.
지난 일요일 친정에 갔을 때 엄마가 생콩가루를 주셔서 반갑게 받아왔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거리가 마땅찮아서 뭘 할까 하다가 머릿속에 딱 떠오르는 것이 생콩가루였다. 흰 쌀죽을 쑤다가 생콩가루를 물에 타서 넣고 저으면 콩죽이 된다. 소금으로 적당히 간을 해서 대접에 담아낸다. 취향에 따라 감자를 썰어 넣기도 하는데 친정에서는 주로 생콩가루만 넣는다.
콩죽을 잘 끓이시던 할머니 생각이 났다. 같이 먹던 형제들도 떠오르고 콩가루를 섞어 만든 칼국수도 생각났다. 할머니께서는 콩가루와 밀가루를 섞어 반죽을 만들었다. 긴 직사각형 모양의 넓적한 나무판에 치댄 반죽을 놓았다. 그리고는 박달나무로 만든 긴 홍두깨로 밀어서 넓고 길게 만들었다. 반죽이 들러붙지 않게 콩가루를 섞은 밀가루를 조금씩 뿌려가며 늘려 갔다.
우리 올망졸망한 형제들은 군침을 삼켜가며 그 모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칼국수 반죽이 커다란 원모양이 되면 길게 접고 접어서 칼로 썰었다. 면발이 길수록 잘된 것이었다. 엄마는 옆에서 잘려 나온 칼국수를 양푼에 담느라 분주하셨다. 칼국수를 썰고 남은 부분을 ‘국시 꼬랭이’라고 했다. 우리는 바로 그것을 기다렸다. 그런 우리 마음을 아는 할머니는 되도록 국시 꼬랭이가 많이 나오게 일부러 끝까지 썰지 않으셨다.
“할매! 나도 조.”
“할매, 나도 나도.”
팔남매의 손들이 쑥쑥 앞으로 나왔다. 나도 질세라 기를 쓰고 손을 내밀었다.
“그래, 우리 이뿐 새끼들 마이 먹어라.”
할머니 목소리에 사랑이 듬뿍 배어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국시 꼬랭이를 쥐고 부엌으로 뛰어갔다. 아궁이 불에 올려놓고 맨손으로 집어내다 데이기도 했다. 잔불에 굽기도 하고 겨울에는 놋화로에 놓기도 했다. 구워서 간식으로 먹었는데 불에 올려놓으면 울룩불룩하게 되다가 어떤 것은 불룩한 껍질이 한 겹 터지기도 했다. 잘 구워진 국시 꼬랭이는 입안에서 바삭바삭 소리를 냈다. 고소한 냄새까지 해서 여간 맛나지 않았다.
요즘은 칼국수를 직접 만들어서 먹는 집이 별로 없다. 웬만하면 그냥 나가서 사먹고 만다. 그러니 국시 꼬랭이도 먹을 수가 없어 한번 씩 그 맛이 그립다. 언제 한 번 마음먹고 콩 칼국수를 만들고 국시 꼬랭이도 넉넉하게 남겨서 솜씨껏 구워 보아야겠다. 나도 먹고 아이들에게도 권해 봐야겠다. 먹을거리가 많은 요즘에 우리 아이들이 맛있게 먹어 줄까? 단맛 나는 과자나 빵, 케이크에 아이스크림까지 먹을 것이 좀 많아야 말이지. 그렇더라도 아이들도 볶은 콩가루와 칼국수, 수제비는 좋아하니까 잘 먹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콩가루를 이용해서 다양한 음식을 만드셨다. 냉이와 꽃다지를 버무려 국을 끓이셨다. 시래기 국이나 김치를 씻어 만든 국에도 콩가루를 넣고 쑥에도 콩가루를 버무려 쑥국을 끓이셨다. 엄마가 직접 캐주신 냉이도 받아왔으니 내일은 그렇게 해 먹어야겠다. 수제비 만들 때 콩가루를 섞으면 콩 수제비가 된다고 한다. 그렇게도 해 보자.
볶은 콩가루를 비벼도 맛있었다. 흰쌀밥에 볶은 콩가루를 버무리기도 했다. 고소하고 달작지근해서 형제들이 서로 달려들어 먹었다. 그 맛을 생각하면 지금도 군침이 돈다. 입가에 콩가루가 묻는 것도 개의치 않고 욕심을 내다가 목에 걸려 켁켁 거리기도 했다. 얼른 물 한 모금을 마시면 시원하게 내려갔다.
아이들에게 콩가루 묻힌 밥을 주었다.
“이거 맛있어, 한 번 먹어 봐. 엄마 어렸을 때 이거 진짜 좋아했데이.”
열심히 권해 보았다. 아이들 표정은 뭐 이런 게 다 있느냐는 듯 생뚱맞다. 권에 못 이겨 한 번 더 먹어 보더니 곧 잘 먹었다. 그런데 더 달라고 조르지는 않았다. 왠지 서운했다. 내 입맛과 아이들의 입맛 사이에 공감하지 못하는 어떤 세대차 같은 것이 느껴졌다.
콩죽은 향수(鄕愁)를 불러일으킨다. 호박죽 팥죽과 더불어 고향 생각을 물씬 나게 한다. 인터넷에 콩죽이라 쳐 봤더니 콩을 불려 믹서에 갈아서 끓이는 방법이 많았다. 더러 생콩가루로 추억의 콩죽을 쑤어 먹는다는 사람도 있었다. 산 좋고 물 좋은 고향땅에서 자란 것은 뭐든지 정이 가고 맛도 더 있는 것 같다. 하물며 엄마 손끝 정성이 묻어나니 더 말해 뭣하겠는가. 오늘따라 돌아가신 할머니와 친정에 계신 엄마가 더욱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