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을 당시의 하늘이 모습
확인 못한 죄
살아오면서 마지막 확인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일을 그르치거나 곤란을 당한 일이 꽤 있다. 컴퓨터에서 심혈을 기울여 작업해 놓은 문서나 글을 저장하지 않았다가 실수로 날리기도 했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창문을 닫지 않아 도둑이 그리로 들어오려 한 적도 있었다.
대학생시절 한여름 밤이었다. 자취집에서 너무 더워 창문을 살짝만 열어 놓고 잠이 들었다. 잠결에 드르륵 하는 소리가 들려 나도 모르게 일어났다. 비몽사몽 중에 창문으로 다가가 보니 문이 반쯤 이상 열려 있었다. 얼떨결에 창틀에 손을 놓았는데 물컹 하는 것이 잡혔다. 부리나케 어떤 사내놈 하나가 올라오다가 제가 먼저 화들짝 놀라 쏜살같이 도망가는 게 아닌가.
순간 정신이 번쩍 들고 소름이 끼치고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가슴이 마구 쿵쿵거렸다. 어렴풋이 머리 실루엣만 봤을 땐 까까머리라 방위병이나 군인일 가능성이 있었다. 불을 켜고 두려움 가득한 마음으로 방문을 열고 둘러봐도 그 어디에도 흔적이 없었다. 그때 하마터면 내가 뉴스에 날 수도 있었을 것이고 뒷일은 장담할 수가 없었다. 하늘에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그 이후 문단속이나 가스점검 같은 것은 확실히 한다.
그날은 모진 여름이었다. 날씨가 미쳤는지 연일 폭염을 쏟아내다가 커다랗고 시커먼 구름이 하늘에서 대판 싸웠다. 번쩍 쾅 우르르~ 아우성치더니 후드득 후둑 주룩주룩 구름이 울고 땅이 젖고 흙냄새가 폴폴 났다. 이내 비 그치고 다시 후텁지근, 불쾌한 흔들다리 하나 걸쳐놓았다. 딸도 나도 축 늘어져 거실 대자리에 누워 스르르 잠이 들었다. 저녁이 머잖은 늦은 오후였다. 밖에서 사람소리가 났다. ‘앞집에 손님이 왔나?’ 천정에도 거실에도 선풍기가 열심히 돌고 있었다.
“엄마! 하늘이 나갔어.”
목소리가 다급했다.
“뭐? 문이 열려 있었나?”
큰일 났다! 문만 열리면 이때다 싶어 내빼는 녀석이었다. 공원으로 큰길로 여기저기 찾아 뛰어다녔다. 가슴이 쿵쿵거렸다. 불안했다. ‘이넘이 한두 번도 아니고’ 하늘이를 원망도 해보았다.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사람마다 못 봤다, 모른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딸의 친구 둘을 불러내서 가까스로 하늘이를 찾았다.
휴대폰에서 딸이 큰소리로 울었다.
“ 엄마 하늘이 죽었어.”
아파트 정문 앞 큰길에는 차들이 벌벌 떨며 기어서 지나가고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길옆 골목어귀에서 딸이 슬피 울고 있었다. 차마 가까이 가지 못하는 딸, 친구들의 위로를 받으며 닭똥 같은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하늘이가 피를 흥건히 쏟아낸 채 널브러져 있었다.
하필이면 그날따라 왜 안 가던 길로 가서 우리가 쉬 찾지 못했던가. 고기냄새가 유혹했나? 고기 집 앞에 누워 있었다.
‘미안하다 미안해. 문단속 제대로 하지 못한 그 죄 너무 크구나.’
남편도 나도 첫날은 꺼이꺼이 울고 딸은 며칠이 지나도 밤마다 운다. 제가 마지막으로 들어와 제 탓이라며 넋이 나갔다. 매일 밤
끌어안고 같이 자던 사이인데 그 마음 오죽하랴. 이 여름엔 비도 어찌 그리 자주 내리는지 우리 하늘이 차갑게 젖겠다. 그 무덤 다 떠내려가겠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집이 어찌 이리도 썰렁한 지 문 열 때마다 꼬리 살랑거리며 튀어 나올 것만 같다. 소파에도 식탁에서도 여기저기 함께 한 흔적 많기도 하다. 그와 아들딸은 다 강아지를 사랑하고 예뻐했지만 나는 딸의 정서를 위해 큰맘 먹고 데려와 반은 성가시고 반만 예뻤다. 베란다에 싸놓은 배설물을 치우고 씻어 내릴 때마다 허리 아프다 툴툴댔는데 구박도 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잘 해줄걸.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게 하겠는데 이것도 다 운명이라 받아들여야 할까. 마지막 점검이나 확인을 하지 못한 결과가 귀하디귀한 목숨을 앗아가기도 한다는걸 뼛속깊이 느낀다. 가족이나 다름없는 하늘이를 잃고서야 절실히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