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달걀 / 고 영

서해기린 2020. 5. 20. 03:17

달걀 / 고 영


 


 

조금 더 착한 새가 되기 위해서 스스로 창을 닫았다.

어둠을 뒤집어쓴 채 생애라는 낯선 말을

되새김질하며 살았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집은 조금씩 좁아졌다.


강해지기 위해 뭉쳐져야 했다.

물속에 가라앉은 태양이 다시 떠오를 때까지 있는 힘껏 외로움을 참아야 했다.

간혹 누군가 창을 두드릴 때마다 등이 가려웠지만.


방문(房門)을 연다고 다 방문(房門)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위로가 되지 못하는 머리가 아팠다.


똑바로 누워 다리를 뻗었다.

사방이 열려 있었으나 나갈 마음은 없었다.

조금 더 착한 새가 되기 위해서

나는 아직 더 잠겨 있어야 했다.

 

 

-한국시협 젊은시인상 수상 시집『딸꾹질의 사이학』(2015)에서

 

 

고영 

1966년 출생. 2003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산복도로에 쪽배가 떴다』『너라는 벼락을 맞았다』.

현재《시인동네》 발행인 겸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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