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時節)
정경해
골목 어귀에 들어서니 담장 너머 낯익은 얼굴들 함박웃음 머금고 반갑게 알은체를 한다 저 활짝 웃는 얼굴 얼마만인가 요즘 왜 사람들이 보이지 않느냐며 목을 길게 늘어뜨리고 동네 소식 묻길래 한 발 다가가 조근조근 전해줬다 네 번째 집 임씨 아들 이태원 갔던 일, 임씨와 아침 인사 악수했던 골목 끝 집 김 씨 얘기. 김 씨와 술 한잔했던 동네 몇몇 사람들 이야기까지 모두가 자가격리 중이라 대문을 나올 수 없다고 마스크 덮어쓴 얼굴로 눈만 빼꼼히 내밀고 말했더니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서로 바라보며 고개를 흔들흔들 갸웃갸웃 한다 손 흔들고 발길 돌리는데 등 뒤로 들리는 까르르 웃는 소리,
마스크 없는 해맑은 얼굴들이 힘내라고 소리친다
유월의 줄장미,
- 2020년 7월호 《시인동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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