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어떻든 사람입니다
천사가 아닙니다
마당이거나 골목이거나 언덕이거나
지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랫목은 어디입니까
고드름은 왜 생깁니까
그것이 궁금하다면
당신은 백색에 대한 오해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하늘로부터 주관성을 부여받았습니다
눈 속의 눈이 생길 수 있고 깊어질 수도 있습니다
저에게 많은 감정이 없습니다만
특별한 비밀이 있습니다
적막과 대면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뼈와 살과 피와 심장과 마음이 하나라는 착각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아이가 잠든 사이에 길고양이를 찾아 나설 참입니다
나를 보고 놀라지 않은 이유에 대해 물어볼 것입니다
벌벌 떨고 있는
배고픈 새끼고양이를 만난다면 처음으로 울 것입니다
그만 녹아 흐를 것입니다
머리가 재빨리 심장에 달라붙어 기형이 되어 무너질 것입니다
전이일까요
자리바꿈일까요
끝까지 실패만 하는 생이란 없으니까
수평이 된다고 끝이 아닐 겁니다
그럴 필요는 없겠지만
누군가 그리운 겨울엔 기필코 사람입니다
「눈사람의 기분」 전문/ 하린
‘어제와 내일 사이에서 만난 시인’ 「눈사람의 기분」외 9편 중에서
『포엠피플』 2022년 겨울호
<신작시>
장롱과 관 사이로
나무의 생각이 지나간다
닮은 것들은
마음에 창을 내고도 내부를 가두는
습관을 가졌다
장롱에서는
행성을 꿈꾸는 옷이 날개를 깁느라
오동꽃 향기가 나는데
불모지인 관 속에서 아버지는
있는 곳이 그저 하나의 장소라고 한다
아버지와 장롱 사이로
관의 생각이 무더위처럼 지나간다
나와 아버지의 거리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오동꽃과 오동잎의 거리
슬플 때 노을을 보았다던
어린 왕자처럼
늙은 시간을 다녀가는 동안
날마다 스무 번도 넘게 노을을 보았지
아버지는
오동꽃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버지의 배꼽을 닮았다고
이파리 쪽으로 휘파람을 불어대던
바람의 말
나와 오동나무 사이로
장롱의 독백이 지나간다
혼자서 견디는 오동의 거리
오동나무의 오래된 저녁
「오동의 거리」 전문/ 이승예
‘in focus’ 「거미의 건축학」 외 9편 중에서
『포엠피플』 2022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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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엠피플』 2022년 겨울호가 나왔습니다. 창간호 표지의
『poem people』을 한글로 바꾸고 신인문학상 상금을 2백만 원에서 3백만 원으로 올렸습니다. 재등단도 가능하니 많이 도전해 주세요.
이번 겨울호에도 실력 있는 선생님들이 좋은 작품을 보내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포엠피플』많이 사랑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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