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조

목력木歷 / 조경선

서해기린 2021. 1. 26. 22:56

자르기 전 쓰다듬으며 나무를 달랜다

생의 방향 살핀 후 누울 자리 마련한다

첫 날刀은 이파리마저 놀라지 않게 한다

 

나이테 한 줄 슬금슬금 잘려 나가니

뱉어낸 밥 색깔이 뼛가루처럼 선명하다

100년의 단단한 숨소리 한순간에 무너지고

 

한없이 차오르던 숨길은 물길이었을까

안쪽으로 파고들면 내력은 촘촘해지고

울음을 간직한 옹이가 더욱 단단해진다

 

벌목은 베는 게 아니라 만나는 거다

커다란 눈동자 되어 밑동이 살아 있는 건

최초의 뿌리가 사람을 지켜보기 때문이다

 

 

 

-시집 <목력木歷> 책 만드는 집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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