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집 & 앤솔러지

《헉! 》-현대사설시조포럼 앤솔러지 Vol 12 - 2

서해기린 2021. 11. 27. 10:34

 

#사설시조 #현대사설시조포럼앤솔러지 2021 Vol #헉!


바람은 얼마나 고마운가. 바람은 늘 우리 곁에 있다. 바람이 없으면 식물도 썩어버린다. 바람 속을 걷고 바람이 밀어주고 간지르고 바람을 맞기도 한다. 바람을 피우고 바람에 단단해진다. 얼굴을 스치는 겨울바람은 나를 깨우고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바람 속을 다 걸어야 한다든가
바람이 키웠다는 시인도 있지 않은가.
바람에도 뼈가 있고 미소가 있고 성질이 있다. 나는 바람의 등을 타고 종종 옛집으로 날아가기도 하는데 바람과 풀들은 또 얼마나 친한가.

바람에 대한 시조를 읽다 보니 몰랐던 바람도 대거 등장하고 구바람 신바람 별의별 바람이 다 나와 흥미로웠다. 자꾸 옮겨 쓰다가 어제는 글자수 제한에 걸려 멈출 수밖에 없었다. 바람에 대한 시는 끝까지 다 소개할 참이다. 나의 바람은 어떠했는지 생각하며 읽어도 좋을 것이다.

♤♧

송전선을 타고 온 바람이 지나간 후에

염창권


누군가, 바람의 문 앞에서 줄을 맸다

햇빛 아래 벗은 길이 몇 갈래로 나뉘었고 따라가던 그림자는 발목을 또 잃었다, 머리까지 걸어도 늘어뜨린 철선 아래였다
책에서도 바람의 지문을 찾지 못했다
퍼렇던 마음이 입술에 닿은 것일까
두고 온 날들이 짱짱하게 당겨지며 움켜쥔 손바닥에 핏금이 새겨졌다. 고압으로 충전된 운명선이 지나간 듯,

서릿발 내린 풀잎마다 늑흔肋痕이 생생했다


바람이 불어오네 / 장 재


소낙비 퍼붓겠네. 헝클어진 바람분다.
좌익 우익 마타도어 핑퐁 핑 내로남불
어질던 동구밖 아재
미간 가득 이는 바람
주식 바람 펀드 바람 속아도 사는 복권
부동산에 코인 바람 흙수저로 퍼는 바람
에라이 불쌍한 것아
바랄 것을 바래라.

바람에 색깔 입혀 눈가에 내걸었다.
관셈보살관셈보살 구순의 내 어머님 나만 보면 뇌이신다. 바람은 바람이 되고 흔들리는 나뭇잎만 보아도 눈물 글썽거리는데 노을에 비친 나와 내 어머님의 막차 시간표까지 초라하고 남루한 모습이 되고, 바람은 바람이 되어 삭대엽 중중모리 색색깔로 맺히는 날
바람이 쓰담거린다
토닥이며 지난다.


바람에 관한 관찰 일지 / 신양란


데크에 앉아 마당 풍경을 꼼꼼히 읽고 있노라니

나뭇잎 사이 헤집는 바람의 소리가 보이더라. 꽃잎 툭툭 건드려보는 불량한 손짓이 들리더라. 풀 내 묻은 바람은 내 살갗을 희롱하고, 볕에 달궈진 폭신한 바람은 코끝을 슬쩍 만지고 가더라. 점잔 빼다 촐랑대다 능청스레 눈치보다, 쥐죽은 듯 숨죽이다 토라졌나 성질부리다, 곰실곰실 기어가다 팔랑팔랑 날아가다, 휘파람불다 한숨 쉬다 두런두런 속삭이다, 온갖 재롱 온갖 재주 굿판이 따로 없더라.

일지에 요약해 적는다.
'오늘 바람은 맹랑했음'
이상, 끝!


바람난 무 / 김숙희


야멸차게 잘랐는데 한순간 어이없네!

바둑 공책 반만큼씩 구멍 숭숭 빠꼼빠꼼 달랑게 집 즐비하게 늘어섰네 늘어섰어 어쿠! 그럴싸한 겉모습에 그만 속고 말았구나 오동통 뽀얀 얼굴 연초록 볼연지에 말끔하게 목욕시킨 그 모습, 그 자태는 얼마나 또 정갈했나, 첫눈에 반했거늘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거늘 고뿔 기운 다스리려 뭇국 서둘다가 오늘 저녁 뭇 국은 그야말로 無국일세 애재라, 심사가 배배 꼬여 바람 든 널 냅다 홱 던지려다 아니 아니, 아니지 슬그머니 제 자리에. 뉘 몰래 바람 난 게 어디 너 하나랴, 너뿐이랴...

안경도 바람난 게지 난시원시 뒤죽박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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